kt 황재균-넥센 김민성(오른쪽). 스포츠동아DB
황재균(30·kt)과 김민성(29·넥센). 두 사람은 2014년 아시안게임대표팀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같은 팀에서 뛴 적이 없다. 그러나 둘의 야구인생은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황재균은 최근 kt와 4년 88억원에 계약했다. 보장액수만 놓고 보면 KBO 역사상 역대 5번째, 총액으로는 6번째 대형 계약의 주인공이 됐다. 반면 김민성은 단 하루 차이로 올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획득하지 못했다. 2010년 7월 20일. 그들은 7년 후 오늘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사연이 깊다. 2009년 12월 30일 히어로즈는 전격적으로 3건의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장원삼을 삼성, 이택근을 LG, 이현승을 두산으로 보냈다. 모두 현금트레이드였다. 2010년에도 히어로즈의 트레이드는 계속됐다. 3월 12일 마일영을 한화로 트레이드 시켰다. 그리고 7월 20일, 이번에는 팀의 핵심 타자로 떠오르고 있던 황재균이 포함된 1대2 트레이드를 발표한다. 롯데로 황재균을 보내고 내야수 김민성과 투수 김수화를 받는 조건이었다. 여기저기서 현금이 포함된 트레이드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유영구 KBO 총재 역시 승인을 보류했다.
히어로즈는 3월 마일영을 한화로 보내고 마정길과 함께 현금 3억원을 받았다. KBO는 이 트레이드를 승인하면서 2010년 12월 31일까지 더 이상 현금이 포함된 트레이드는 할 수 없다고 못 박은 상태였다. 황재균과 김민성의 트레이드 승인이 미뤄진 배경이다.
트레이드 발표 이튿날인 7월 21일 황재균은 롯데 유니폼을 입고 훈련했다. 김민성도 목동에서 훈련을 하며 경기출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기다렸던 트레이드 승인은 떨어지지 않았다. 양 구단은 현금 트레이드를 적극 부인했지만 외부의 시각은 싸늘했다.
히어로즈 시절 황재균-롯데 시절 김민성(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롯데 자이언츠
황재균이 18개의 홈런을 친 2009년, 김민성은 타율 0.248에 4홈런을 때렸다. 유망주 출신 김수화가 포함됐지만 1군 통산 성적이 1승10패였던 투수였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거래는 아니었지만 수사권이 없는 KBO는 하루 뒤인 22일에서야 이 트레이드를 승인했다.
이후 황재균은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이를 빗대 ‘황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롯데에서 쑥쑥 성장했고 2016년 타율 0.335, 27홈런을 기록하며 특급 FA가 됐다.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해 메이저리그 무대도 밟았다. 그리고 올해 말 국내 복귀를 선택했다.
김민성도 넥센에서 국가대표 내야수로 성장했다.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하고 3할 타율에 두 자릿수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가 됐다. 김민성은 KBO가 트레이드 승인을 망설인 단 하루 때문에 올 시즌 후 FA가 되지 못하자 법의 힘에 의지하기도 했지만, 가처분신청이 기각되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만약 김민성이 FA자격을 획득했다면 두 남자의 스토리에는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 올해 FA시장은 야수 풍년이다. 그러나 특급 FA는 황재균을 제외하고 모두 외야수였다. 황재균과 같은 3루수인 김민성은 훌륭한 대체제가 될 수 있었다. 구단이 가장 선호하는 젊고 저비용 고효율이 가능한 유형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건실하고 내실 있는 FA후보였다.
그러나 운명은 또 한번 엇갈렸다. KBO의 FA 시장은 지극히 패쇄적이다. 황재균은 거포 내야수로 올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김민성은 “깨끗이 잊고 내년 더 좋은 성적을 올리고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황재균과 김민성은 내년 각각 만 31세, 30세가 된다. 야구인생은 길다. 고교시절에는 김민성이 황재균보다 훨씬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지금 한 명은 메이저리그 출신에 리그를 대표하는 고액 연봉자가 됐다. 나머지 한명은 트레이드 직후 사라진 그 하루로 1년 더 권토중래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10년 후, 그들은 또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