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은퇴도 타이밍의 예술이다

입력 2017-12-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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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삼성이 넥센에 10-9로 승리했다. 경기 종료 후 은퇴식을 치른 이승엽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대구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타격은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시속 150㎞의 빠른 공을 쳐내는 기술이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능력이라는 표현이다. 피칭은 그러한 예술적 영역의 타격을 이겨내는 싸움이다. 프로야구에서 타격과 피칭만큼이나 타이밍이 중요한 결정은 ‘은퇴’다. 언제 어떻게 은퇴를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12월은 작별의 시즌이다. 스포트라이트는 프리에이전트(FA) 계약에 쏠려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선수들이 그라운드와 작별한다.

이승엽(전 삼성)은 가장 예술적인 타이밍으로 은퇴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수칠 때 떠났고 가장 성대한 환송을 받았다. 이호준(전 NC)도 명예로운 은퇴를 했다. 방송사에서 해설자로 영입하기 위해 뜨거운 구애를 보냈지만 제2의 인생을 지도자로 설계하며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이호준의 은퇴식. 사진제공|NC 다이노스


명 투수였던 김시진 전 롯데 감독은 “‘이 공은 삼진이다’라는 자신감을 가졌는데 안타가 됐거나 평범한 플라이 아웃이라 판단했는데 홈런이 되는 순간 ‘아 은퇴할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기 스스로에게 매우 냉정히 판단한 경우다. 상당수는 “충분히 더 할 수 있는데…”라는 아쉬움 속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는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한 해설위원은 “은퇴 직후 코치 제의를 받는 비율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대단한 행운이다. 유니폼을 벗는 순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냉혹한 사회를 만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첫 단계인데 여기서 좌절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선수는 팀에서 존중 받는다. 세심한 건강관리가 뒤따르며 많은 배려 속에서 선수생활을 한다. 은퇴 순간 그 모든 것이 끝난다.

은퇴 후 곧장 친정 두산에서 코치 계약을 한 정재훈은 “공백 없이 코치가 된 건 매우 큰 행운이다. 그런 것을 잘 알면서도 솔직히 선수생활에 미련이 남는다. 마지막 순간 마운드에서 있지 못하고 재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매우 솔직한 말이다.

두산 정재훈 신임 코치.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일부 선수들은 코치가 아닌 프런트 변신 제안을 받기도 한다. 대부분 깊이 갈등한다. 연봉이라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선수로 아쉬움이나 미련이 크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출발이 보장된 은퇴를 거절하거나 그마저도 기회를 잡지 못한 경우, 상당수 은퇴선수들은 오랜 시간 방황한다. 프로출신이면 은퇴 후 선택지가 많을 것 같지만 아마추어 지도자 자리도 경쟁이 치열하다. 한 두 해 경력 단절이 길어지면 다시 야구계로 돌아오기도 어렵다. 사업에 크게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실패 사례가 훨씬 더 많다.

메이저리그에는 ‘선수가 나이를 먹으면 먼저 파워가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발이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친구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친구가 사라지기 전에 은퇴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다. 그러니 ‘3할의 예술’보다 어려운 것이 은퇴의 예술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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