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신태용호 핵심 키워드 된 ‘○○○ 활용법’

입력 2017-12-20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축구대표팀 손흥민. 스포츠동아DB

흔히들 조직의 성패는 사람 관리에 있다고 한다. 재능을 가진 사람을 뽑고, 적합한 지위나 임무를 맡기는 적재적소(適材適所)야말로 성공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뼈저리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름 깨나 있는 많은 분들이 용인(用人)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도자는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는 <지도자의 조건>에서 마음을 얻는 지도력으로 내면을 꿰뚫어보는 직관력, 배려와 존중, 칭찬과 처벌의 원칙 등과 함께 자질을 판단하는 관찰력을 꼽았다. 구성원이 어떤 자질을 갖췄는지 파악하고, 그 자질을 어떻게 조직에 적용할지를 알아야 비로소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스포츠의 경우 선수 능력을 파악하고,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감독이라 할 수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태극전사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용인술은 유명하다. 그는 선수선발을 할 때 학연, 지연, 혈연을 배제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구상한 조직에 맞는 또는 가능성 있는 선수를 발굴했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훈련과 전술로 성공을 거뒀다. 박지성, 송종국, 김남일 등이 그렇게 해서 배출된 스타들이다.

K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전북 최강희 감독도 용인술의 귀재다. 최 감독과 이동국의 인연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외무대 적응에 실패한 이동국이 K리그 구단에서도 방출될 위기에 처하자 직접 손을 내밀었다. 이동국의 활용법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동국은 재기에 성공했고, 덕분에 최 감독도 승승장구했다.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지도력을 인정받은 계기도 용인술과 무관치 않다. 손흥민 활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동안 대표팀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손흥민이 소속팀 토트넘에서는 펄펄 날다가도 대표팀에만 오면 고개를 숙인 점이다. 신 감독은 손흥민이 소속팀에서 4-4-2 포메이션의 최전방으로 나서 슈팅과 득점이 몰라보게 달라진 점을 보며 힌트를 얻었다. 그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측면 대신 스트라이커로 기용했고, 이게 11월 A매치에서 큰 효과를 봤다. 손흥민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 완전히 다른 플레이를 펼쳤다. 손흥민 활용법은 선수와 대표팀, 그리고 감독 모두를 살렸다.

축구대표팀 김신욱.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신 감독은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서 김신욱을 살렸다.

장신(197.5㎝)의 김신욱는 그동안 계륵 같은 존재였다. 쓰자니 활용도가 떨어지고, 모른 채하기엔 신체조건이 아까웠다. 동아시안컵 이전까지 A매치 3골이 전부였다.

우선 출전시간이 짧았다. 주로 지고 있는 후반 중반 이후 투입됐다. 투입되면 크로스는 무조건 김신욱의 머리로 향했다. 상대 수비가 뻔히 알고 있는 루트다. 공격은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감독들이 딜레마에 빠진 이유다.

신 감독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김신욱의 머리뿐 아니라 발에도 초점을 맞췄다. 최대한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했다. 다른 선수들에게는 김신욱의 머리와 발 모두를 활용할 수 있는 크로스를 주문했다. 크로스의 정확도도 높아졌다. 김신욱 활용법은 적중했다. 머리와 발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괴롭혔다. 3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이번 대회 최대 수확이라는 후한 평가가 줄을 이었다. 김신욱은 “이전 대표팀 감독들은 나를 주로 교체 선수로 활용했다. 신태용 감독님이 대표팀에서 죽어가던 나를 살렸다”며 고마워했다.

물론 아시아권에서 통했던 김신욱이 높이와 파워에서 한 수 위인 유럽 수비수에게도 통할지는 알 수 없다. 손흥민과의 호흡 또는 손흥민이 부진했을 때의 대체 자원으로 활용될 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김신욱 활용법을 찾으면서 공격 옵션이 다양해졌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대표팀에 뽑힐 정도의 선수라면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가치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건 감독의 몫이다. 평범한 감독과 명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신 감독은 19일 유럽으로 떠났다. 유럽파 점검을 위한 일정이다. 러시아월드컵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럽파를 찾는 게 목적이다. 신 감독이 숨은 가치를 발견하게 될 주인공은 누구일까.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