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브레이크] 감독 vs 베테랑 충돌의 이유

입력 2018-10-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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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왼쪽)은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베테랑 내야수 송광민(오른쪽)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감독과 베테랑 선수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한 감독의 결단은 과연 한화의 가을야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스포츠동아DB

감독과 베테랑 선수는 왜 갈등을 빚을까.

한화 이글스를 11년만의 가을잔치로 이끈 ‘초보 사령탑’ 한용덕 감독은 온화한 이미지의 덕장으로 꼽힌다. 그러나 페넌트레이스 최종 순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전 3루수이자 수준급 타격을 보여주고 있던 송광민(35)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아울러 포스트시즌 출전선수명단에서도 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송광민은 올 시즌 중반 팀의 주장을 맡았다.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값진 성과를 연출해 낸 한 감독 앞에서 베테랑 선수들의 대표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한 감독은 단호했다. 송광민을 2군으로 보내며 먼저 취재진 앞에서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 팀이 우선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감독과 베테랑의 갈등 혹은 파워게임은 물밑에서 끝없이 이뤄져 왔다. 선수기용이라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감독이지만 항상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선수들이 이겼을 때는 항상 예상치 못한 후폭풍이 뒤따랐다. 승리한 감독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쓸쓸히 쫓겨났다.

한 해설위원은 4일 “한용덕 감독이 이글스 레전드 출신이고, 올해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에 이러한 공개적인 선택이 가능했다. 올해 한화는 베테랑들의 박탈감이 큰 상황이다. 선수도 승리가 우선이지만 경기에 뛰지 못한다는 것은 굉장히 모욕적이고 경제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경기 출전 여부가 갈등의 시작이다. 대부분 감독의 권한과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첫 시즌, 또는 계약 마지막 해 다툼이 커진다. 베테랑 선수들은 스스로 쌓은 커리어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다. 처음 야구공을 잡은 초등학교 때부터 팀 최고 선수였기 때문에 자존감이 대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안팎 후배가 자기 자리에서 경기를 뛰는 모습에 모멸감을 느낀다.

감독 입장에서는 팀 전체를 봐야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같은 성적이라면 젊은 선수를 기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하향세가 뚜렷한 베테랑은 골칫덩어리다. 차라리 그 자리에 유망주를 올려 경험을 쌓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1군 엔트리가 변동 되는 순간, 그리고 선발출장 라인업이 발표될 때마다 클럽하우스에 긴장감이 감도는 이유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LA 다저스의 명 사령탑 토미 라소다 감독은 “선수를 상대하는 것은 비둘기를 손으로 잡고 있는 것과 같다. 너무 꽉 잡으면 비둘기는 죽을 것이고, 너무 살살 잡으면 날아가 버린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메이저리그와 KBO리그의 팀 문화는 매우 다르다. KBO 선수들은 표면적으로 감독을 스승으로 여기지만 미국은 철저히 비즈니스 관계다. 선수로 빅리그 경력이 형편없었던 라소다 감독은 중계 카메라 앞에서도 선수에게 욕설을 섞어가며 다그쳤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뉴욕 양키스의 명포수 출신 요기 베라(1925~2015)도 감독 시절 ‘하모니카 사건’(팀이 패배한 날 구단 버스에서 하모니카를 불던 필 린츠와 갈등, 그러나 그 뒤에는 팀 최고 스타이자 베테랑 미키 루크의 장난이 있었다는 것이 당시 양키스 투수였던 짐 바우튼의 회고록 ‘볼 포’를 통해 알려졌다)으로 권위가 크게 흔들렸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LG 양상문 단장-송일수 전 두산 베어스 감독(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그만큼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1군 선수들을 관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부분이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감독과 베테랑의 크고 작은 갈등은 많았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은 해태 타이거즈 사령탑 시절 베테랑 선수들을 트레이드를 통해 수시로 내보냈다. 품고 있는 것 보다 내보내는 것이 젊은 선수들을 위해서도, 팀을 위해서도 좋다는 판단이었다. 이 과정에서 베테랑 슈퍼스타 선수와 몸싸움을 벌였다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도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다 이에 반기를 든 노장 선수가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했다. 선동열 국가대표 감독은 프로 사령탑 시절 베테랑 선수들을 젊은 선수들과 똑같은 잣대로 평가했다. 팀을 상징했고 은퇴하는 순간 영구결번이 보장되는 대스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LG 트윈스 양상문 단장 역시 감독시절 세대교체를 위해 비난을 감수하면서 베테랑들을 대거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강수를 뒀다.

송일수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은 2군에서 맹타를 휘두르는 김동주를 1군에 부르지 않았다. 비난하는 팬들에게 “선수 기용은 감독의 권한이다”고 맞섰다. 두산은 이후 프런트가 감독과 베테랑의 갈등 조정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1군에서 리빌딩이 이뤄지면 2군에 베테랑 선수가 많아지고, 유망주들이 위축될 수 있다. 두산은 이런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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