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3개월, 벤투호는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입력 2018-11-2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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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러시아월드컵이 끝난 직후 한국축구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크게 두 갈래였다. 장기적인 플랜과 함께 폭넓은 선수층 확보가 절실했다. 울리 슈틸리케(독일)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신태용의 준비기간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입힌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실험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또 몇몇 주전의 부상으로 팀 전체가 타격을 받자 선수자원 확보의 중요성도 대두됐다.

지난 8월 새 사령탑을 선임하면서 화두로 떠오른 건 ‘철학’이었다.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가 중요했다. 이는 한국축구의 색깔을 의미한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가 낙점된 걸 두고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축구철학’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했다. 그 철학을 구현할 수 있도록 계약기간을 2022년 카타르월드컵까지로 했다. 4년 이상의 장기계약으로 감독에게 힘을 실어준 건 파격적이다.

그렇게 벤투호가 출항한 지 3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6번의 평가전을 치른 가운데 벤투의 철학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배했다.

후방 빌드-업은 벤투가 가장 강조하는 전술이다. 빌드-업은 공격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인데, 벤투는 철저하게 골키퍼 또는 중앙 수비수를 출발점으로 뒀다. 볼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최후방에서 패스가 이뤄졌고, 이런 볼 점유를 통해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패턴처럼 됐다. 또 원터치 패스로 군더더기를 없애면서 속도를 높인 점도 눈에 띈다. 아울러 공격 흐름을 이끄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공간 패스나 풀백의 측면 돌파, 그리고 최전방 공격수의 움직임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벤투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상대의 강한 압박에 흐름이 무너진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 선수 또는 상대팀이 바뀌어도 벤투의 생각은 일관됐다. 이 덕분에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 때 무엇을 준비해야하는 지를 알게 됐다. 지난 3개월을 통해 우리 색깔을 입히는 기초 작업은 성공했다.

선수층이 두꺼워진 점도 긍정적이다. 외국인 감독의 장점 중 하나는 편견이 없다는 점이다. 벤투는 기존 전력 이외에 신예들을 테스트하면서 자원을 확보했다. 특히 황의조, 황인범, 나상호, 이진현, 김문환 등 아시안게임 멤버들을 대거 포함시켜 경쟁체제를 구축한 건 성공적이다. 손흥민, 기성용, 황희찬, 이재성 등이 빠진 멤버로도 우리 색깔을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대표팀은 6번의 평가전 동안 3승3무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코스타리카전(2-0 승)을 시작으로 칠레(0-0 무), 우루과이(2-1 승), 파나마(2-2 무), 호주(1-1 무), 우즈베키스탄(4-0 승)을 상대로 무패 행진을 이어왔다. 선수들은 우리보다 강팀을 상대로 이기는 또는 지지 않는 경기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또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에 신뢰가 쌓였다. 선수들은 코칭스태프의 섬세한 전술훈련에 만족했고, 코칭스태프는 성과를 내면서 힘을 받았다. 즐거움을 되찾은 팬들도 인내하고 기다리겠다는 열린 마음이 됐다.

벤투호의 초반은 예상보다 훨씬 순조롭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모의고사일 뿐이다. 내년 1월 아시안컵이 진짜 승부다. 그동안 갈고 닦은 전술로 성과를 내야만 색깔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생긴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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