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확고한 벤투의 선발 원칙 “성과 만들어야 가치 있다”

입력 2019-05-28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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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주, 이란과 평가전을 갖는 한국 축구대표팀 명단 발표가 27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 열렸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참 한결같다. 웃음기 뺀 표정이나 무뚝뚝한 말투, 통역을 힐끗 쳐다보는 눈짓, 허공을 가르는 손짓 등 언제 봐도 그대로다. 우직함인지 고집스러움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대중에게 각인된 그의 색깔은 뚜렷하다.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끄는 파울루 벤투 감독(포르투갈) 얘기다. 호주(6월7일) 및 이란(6월11일)과 평가전에 나설 명단을 발표한 27일 기자회견장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시종 특유의 진지함으로 미디어를 상대했다. 목소리에 높낮이라도 컸으면 좋으련만, 이 또한 기대를 저버린다.

변함없는 건 또 있다. 선수 선발 원칙이다. 누가 뭐래도 확고하다. 깜짝 발표 같은 건 애초에 기대를 말아야 한다. 이미 검증된 선수 우선이다. 리그에서 물이 올라 여론에서 거론되는 선수를 한 번쯤 뽑을 만도 하지만 그건 벤투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기록이나 순위를 따지지 않는다. 오직 대표팀 스타일에 맞는 선수만 뽑는다.

“어느 리그에서 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순한 득점, 도움 기록도 대표팀에 중요하지 않다.
숫자로 대표팀 합류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능력과 함께 대표팀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는지 여부가 훨씬 중요하다.”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녹아 있는 말이다. 레이더망에 들어온 선수의 과거 경기력과 최근 모습을 살핀다면 싹수가 있다는 얘기다. 다시 보고, 재차 확인하고, 종합적으로 평가한 뒤에야 비로소 믿음을 주는 그런 꼼꼼한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당장 경기에 투입하는 것도 아니다. 기존 선수와 경쟁시켜 가능성을 확인하는 정도다. 3월의 이강인, 백승호 같은 케이스다. 이들은 중장기 관점에서 관리되는 유망주일 뿐이다.

선발은 까탈스럽지만 한 번 믿음을 주면 끝까지 간다. 혹사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하는 손흥민을 굳이 부르는 이유도 “국가대표팀에는 최고의 선수가 와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벤투의 대표팀 운영 방식을 두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다. 평가전을 통해 다양한 선수를 시험해보는 게 아니라 어떤 경기든 기존 멤버로 끝장을 봐야 하는 그의 성격이 못마땅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벤투가 지휘봉을 잡은 지 9개월 정도 지나니 그의 진지함도 이제 익숙해졌다. 어차피 벤투 체제에서는 보수적인 운영이 불가피하다. 그런 감독에게 한국축구의 운명을 맡겠다면 잘 헤쳐 나가길 바랄 뿐이다. 지금 와서 그의 성향을 탓해봤자 소용없다.

지도자는 결과로 말을 해야 한다. 엄청난 액수의 연봉을 받는 감독이라면 그에 걸맞는 성적을 내야 한다. 선수 뽑는 건 감독의 몫이다. 누굴 뽑든 나름의 이유와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목표를 설정하고 그걸 이뤄내는 지도력이다. 벤투의 선발원칙을 존중하는 건 그가 우리의 목표를 이뤄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원칙에 어깃장을 놓을 생각은 없다.

벤투는 올 초 한차례 실망감을 안겼다. 59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을 노렸지만 8강에서 멈췄다. 호평을 하던 여론도 많이 돌아섰다. 그렇다고 단 한번의 실패 때문에 벼랑 끝으로 몰아세워선 곤란하다.

이제부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체제다. 월드컵은 아시안컵과는 차원이 다른 무대다. 우리의 목표도 월드컵 본선 진출과 본선 무대 선전이다. 벤투도 월드컵을 통해 성과를 내야 자신의 원칙을 인정받는다는 걸 잘 안다. 건투를 빈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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