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영의 어쩌다] 지상파 울고, JTBC·CJ 웃고…환장의 드라마 전쟁

입력 2019-08-09 0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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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울고, JTBC·CJ 웃고…환장의 드라마 전쟁

계륵이다. 제작하자니 손해고 포기하자니 모양 빠진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방송사들이 드라마 제작·편성을 놓고 제각각의 표정을 짓는다. 지상파는 골머리를 앓고, 종합편성채널(약칭 종편)과 ‘미디어 공룡’ CJ ENM(이하 CJ)도 시장을 예의주시하기 바쁘다. 물량 공세를 이어가며 ‘치킨게임’을 벌이던 기조는 사라지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곳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먼저 숨 고르기에 나선 것은 MBC다. MBC는 시청 패턴 변화를 이유로 대대적인 편성 체계를 개편하고 드라마 제작·편성 줄이기에 나섰다. 특히 ‘월화극 휴식기’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체질 개선의 일환이다. 만들어 틀어댈수록 적자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성공률이 높은 시간대만 제작·편성하겠다는 심산. 말만 휴식기지, 사실상 ‘월화극 폐지’라는 게 방송가 중론이다. 또한 기존 토요드라마는 금토극으로 개편해 주말 시간대 시청자 공략에 나설 전망이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패턴의 체질 개선은 이미 SBS에서 나타났다. 일찌감치 토요드라마를 금토극으로 개편한 SBS 역시 ‘월화극 휴식기’를 결정하고 드라마 제작 편수 줄이기에 나섰다. 자체 제작 편수도 줄인다. ‘절대그이’처럼 사전제작돼 사실상 제작비가 들지 않는 드라마와 방영권 계약을 체결해 적자 구조를 줄여보겠다는 계획이다. 또 드라마본부를 분사, ‘스튜디오 SBS’(가칭)를 설립하려던 움직임도 있었다. 보다 전문적이고 SBS라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려고 한 것. 이미 기존 자회사 더 스토리웍스를 통해 제작 경험을 쌓은 만큼 외주제작사들과의 경쟁에서도 우위에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내부 반발 등으로 제작사 설립은 사실상 무산됐다. 더 스토리웍스는 존치하지만, 스튜디오 SBS 설립과 인력 이동은 진행이 멈춘 상태다. SBS는 ‘꼼수 편성’ 등으로 중간광고 시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

1000억 원대 적자를 봤다고 알려진 KBS는 지상파 3사 중 가장 늦게 체질 개선에 나섰다. 자회사 몬스터유니온 인력 개편을 일찍이 단행했지만, 기존 드라마 편성은 유지하던 KBS도 적자 구조를 견디지 못하고 편성 개편을 진행 중이다. KBS 역시 ‘월화극 폐지’ 또는 휴식기를 꺼내 들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채널과 달리 일일극과 주말극에서 여유를 보이지만, 들쑥날쑥한 미니시리즈 성적표 탓에 늘어나는 재정 적자가 현실적인 고민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드라마 제작·편성 줄이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상태다.

반면 종편과 CJ는 물량 공세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종편 중 드라마 편성을 주도하는 JTBC는 월화극, 금토극 외에 수목극을 오래전부터 검토 중이다. 애초 올해 안에 수목극 블록을 론칭하려고 했으나 한발 물러나 내년 이후로 새 편성 블록 오픈을 미룬 상태다. 다만 기존의 제작·편성 비중을 유지한다. 여러 곳과 판권·편성 계약을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편성분까지 채웠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JTBC를 선호하는 제작사가 늘어난 것도 이런 기조를 뒷받침한다.

다른 종편들도 드라마 편성을 늘리고 있다. MBN은 꾸준히 수목극 편성을 진행해왔고, TV CHOSUN 역시 최근 드라마 편성에 대한 강한 집념을 나타낸다. 채널A 역시 올해부터 드라마 편성에도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tvN과 OCN을 보유한 CJ는 ‘드라마 축소를 외치는’ 지상파를 비웃기라도 하듯 드라마 시장에서 물량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자회사 겸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을 중심으로 제이에스픽쳐스, 문화창고, KPJ 등이 모두 드라마 제작에 열을 올린다. 올해 인수한, ‘호텔 델루나’ 공동 제작사 (주)지티스트도 내년도 드라마 제작 계획을 일찌감치 수립한 상태다. 각 제작사는 tvN과 OCN 편성은 물론 다른 방송사와의 방영 계약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여기에 넷플릭스와의 전략 제휴는 ‘억 소리’나는 제작비에 보탬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비현실적인 제작비 등이 바로 그것. 종편 등장과 CJ의 성장은 드라마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제작비는 극복해야 할 숙제다. 그중에서 ‘스타 영입 경쟁’으로 시작된 출연료 인상은 드라마 제작비 상승을 가속시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제 와서 바꾸려는 제작 환경도 문제다. 그동안 열악한 제작 환경 개선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방송사들과 제작사들은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 최근 법이 개정되고 나서야 조금씩 변화를 준다.

한 방송관계자는 “드라마 편수가 너무 많다. 더 줄여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라마 시장 호황으로 대충 만들기만 해도 돈이 되고 사 갔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제대로 만들어도 안 팔리는 경우가 많다”며 “드라마 시장이 위축되는 이유는 제작비에 있다. ‘억 소리’ 나는 스타들의 몸값을 충당하려면 제작비가 많이 필요하다. 소위 톱스타라 불리는 이들은 일단 회당 1~2억 원을 부른다. 연기를 처음 해도 인기가 많다면 아이돌은 회당 1000만 원씩 부른다. 이게 현실적인 출연료인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방송관계자 역시 “한 때는 중국에서 사주고, 동남아에서 사주고, 이젠 넷플릭스 같은 곳에서 사주니깐 너도, 나도 드라마를 만들었다”며 “누군가 사줄 거라는 기대보다 보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드라마에 접근해야 한다. 되는 콘텐츠는 굳이 팔려고 하지 않아도 사려고 찾아온다. 제대로 된 드라마 기획과 제작 방향도 없이 일단 돈이 될 것 같으니까 만들어내는 방식은 이제 버려야 할 때”라고 이야기했다.

달라지는 제작 환경에 대해서는 “갑자기 바꾸려니 여기저기서 탈이다. 제때 촬영을 마무리하지 못해 편성이 달라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방송 일자를 고지해놓고 이를 준수하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무엇이 정상적인지 헷갈릴 정도다. 촌극이 따로 없다. 법 개정을 탓할 게 아니라 방송사와 제작사가 일찍부터 제작 환경을 신경 써야 했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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