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감독 류중일. 스포츠동아DB
LG 트윈스는 1월 29일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평소에도 취재진과 가벼운 농담을 즐기는 류중일 LG 감독은 공항에서 좋은 기운(?)을 자랑했다. 류 감독은 “휴대전화 번호 끝자리가 2020이다. 올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비슷한 농담은 출국에 앞선 8일 신년 하례식에서 시작됐다. 류 감독은 이날도 휴대전화 뒷번호를 언급한 뒤 “LG의 팀명이 ‘트윈스(쌍둥이)’ 아닌가. 20이 반복되는 해다. 좋은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류 감독은 과거 삼성 라이온즈 지휘봉을 잡았을 때도 ‘홀인원’, ‘쌍무지개’ 등 개인의 경험을 팀의 좋은 징조로 여겨 빼어난 성과를 낸 바 있다.
# “1999년이 떠오르네요.”
한화 이글스는 30일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올랐다. 한화는 김응용 감독이 부임한 2013년부터 7년간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러왔다. 한화가 미국 본토에 스프링캠프를 차린 건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 그리고 2012년으로 오래전이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출국장에서 “1999년이 떠오른다”고 했다. 창단 처음으로 미국 본토인 애리조나의 피오리아로 출국했던 당시 한화는 매직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한화의 창단 처음이자 아직까지 마지막 우승이다. 한 감독과 정민철 신임단장은 당시 한국시리즈까지 소화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한 감독은 “좋은 기억을 갖고 간다. 기운을 받아오겠다”며 웃었다.
# 가벼운 농담, 내지는 ‘미신’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메시지다. 하지만 스포츠심리학계에선 류 감독과 한 감독의 메시지에 담긴 무의식 효과에 주목한다. 국내 스포츠심리학의 대가로 꼽히며 십수 년째 각종 프로스포츠 구단 심리 자문을 맡아온 한덕현 중앙대 스포츠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4일 “사소한 게 아니다. 제법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한 박사에 따르면 이러한 메시지는 ‘서제션(suggestion·제안)’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 박사는 “이런 메시지를 들은 선수들은 가볍게 웃어넘길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의식에는 ‘우리의 운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한다”며 “감독들이 따로 자리를 마련해 메시지를 주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큰,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징크스와는 다른 개념이다. ‘빨간 양말을 신으면 성적이 좋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가정하면, 다른 색 양말을 신은 날 불안감에 시달린다. 심리학에서 징크스는 ‘강할수록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앞선 두 감독의 ‘미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각종 장비와 데이터로 무장한 데이터의 시대. 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과학의 시대에도 유쾌한 미신 한두 개쯤은 괜찮지 않을까.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