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기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잠실 라이벌의 희비

입력 2020-06-21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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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의 베테랑 투수 김용수가 1990년 한국시리즈 때 한 얘기다.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한 시리즈 1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그는 마운드에서 웜업 피칭을 하던 도중 자신의 다리가 떨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긴장해서 두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는데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첫 공을 던지기 직전이었다. 상대 선수가 이를 볼까봐 걱정하고 있는데 어디서 ‘딱~딱~딱’하는 소리가 들렸다. 타석에 들어선 삼성 타자도 얼마나 긴장했는지 타격자세에서 떨면서 배트로 자기 헬멧을 무심결에 때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그날 김용수는 7회까지 4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LG는 13-0 대승을 거뒀다.

20세기 해태 타이거즈가 한창 잘 나갈 때였다. 삼성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한국시리즈에선 상대가 되지 않았다. 당시 삼성을 대표하는 타자는 장효조였다. 그러나 해태 투수들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1986년 신인으로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3승을 거두며 최우수선수(MVP)까지 거머쥔 김정수가 대표적이었다. 장효조는 유난히 그를 껄끄러워했다. “얼굴도 보기 싫다”고 털어놓았다. 김정수도 이 사실을 잘 알기에 대구 원정에만 나서면 일부러 삼성 덕아웃으로 가서 “효조 형님, 나 왔어요”라고 이죽거리며 인사를 했다.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정해진 규칙이 있고 없고가 싸움과 스포츠의 차이지만, 힘 대결에선 내가 상대보다 앞선다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어야 유리하다는 공통점은 있다. 이는 기량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한때 LG 선수들이 두산 베어스를 우습게 알던 때가 있었다. 차명석 현 LG 단장도 현역으로 힘을 보탰던 1990~1997시즌이다. 당시 두산에선 김상진이 에이스였는데, 잘 던지다가도 LG만 만나면 자기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주 무너졌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21세기부터는 전세가 역전됐다. 요즘 두산 선수들은 LG를 만나면 없던 힘도 내는 것처럼 보인다. 올 시즌 개막전에선 LG가 차우찬을 앞세워 승리했지만, 그 뒤 두산이 연승으로 반격했다. 얼마 전 두산은 한화 이글스와 대전 원정에서 2연패를 당하는 등 4연패로 허덕였다.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져 마운드와 타선 모두에 큰 구멍이 생겼다. 반면 LG는 대전 원정 3연전 싹쓸이를 포함해 5연승의 상승세였다. 그래서 더욱 19~21일 두산-LG의 주말 3연전 맞대결에 관심이 쏠렸지만, 결과는 두 팀의 최근 흐름과는 완전히 달랐다.

LG로선 뼈아프게도 19일과 20일 경기에선 투타에 걸쳐 모두 두산에 압도당했다. 20일에는 두산의 무명 투수 박종기에게 생애 첫 승까지 안기며 기를 살려줬다. 이런 경기로 얻은 자신감은 중요하다. 앞으로 두산 선수들은 누구라도 LG를 더욱 편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긴장감과 자신감은 감기처럼 동료들에게 쉽게 전염된다. LG가 새로운 백신을 찾지 못한다면 2020년 포스트시즌의 꿈은 실현되기 어렵다. 야구는 기량 이전에 멘탈 게임이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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