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장원삼·유원상·홍상삼의 증명,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입력 2020-07-06 08: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롯데 장원삼-KT 유원상-KIA 홍상삼(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롯데 장원삼-KT 유원상-KIA 홍상삼(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시즌이 끝날 때쯤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단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몇 달 전부터 방출을 어느 정도 예감했지만 그 얘기를 실제로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어떻게 먹고 살지 막막한 채 며칠을 보냈다.”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도 방출 통보 앞에선 약해진다. 당장 생계 걱정부터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다는 개인의 희망이 사라진다는 비참함까지 겹친다. 하지만 모든 방출이 끝은 아니다. 올 시즌 이러한 감동 스토리를 보여주는 선수가 여럿 있다.

장원삼(37·롯데 자이언츠)은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데뷔해 2012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했다. 통산 356경기에서 거둔 121승은 역대 좌완 최다승 4위다. 그러나 2019시즌 도중 LG 트윈스에서 방출됐다. 과거에 머무는 대신 자존심을 버렸고 롯데에 입단 테스트까지 받아가며 재기를 꿈꿨다. 경기도 이천에서 경남 김해시까지 직접 차를 몰고 내려간 열정에 롯데도 가능성을 봤다. 장원삼은 1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서 야수 도움을 못 받는 가운데 6이닝 5자책 투구로 1군에 살아남게 됐다.

유원상(34·KT 위즈)은 LG 시절이던 2012년부터 3년간 45홀드를 기록하는 등 허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쳤고 지난 시즌 후 NC에서 방출됐다. KT는 대만 가오슝 마무리캠프 때 유원상을 초청선수로 데려갔다. 입단 테스트 개념이었다. 유원상은 당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며 자신의 공을 힘껏 던졌다. 결과는 합격. 유원상은 올해 1군에서 20이닝 이상 소화하며 3점대 평균자책점(ERA)으로 자신의 값어치를 증명하고 있다.

홍상삼(30·KIA 타이거즈)은 10년 가까이 두산 베어스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150㎞ 가까운 속구의 제구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숱한 비아냥에 정신적으로 큰 생채기가 났고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것까지 털어놨다. 어떻게든 홍상삼을 살리려던 두산도 2019시즌 후 그의 손을 놨다.

하지만 KIA가 관심을 가졌고 메디컬테스트를 거쳐 홍상삼을 품었다. 벌써 두 자릿수 이닝을 소화하며 ERA는 2점대다. 서재응 투수코치는 “볼넷을 줘도 된다. 어떤 공을 던져도 괜찮으니까 자신 있게만 하라”며 스스로 넘지 못했던 벽을 깨줬다. 멘탈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홍상삼은 아이러니하게도 야구가 왜 멘탈 게임으로 불리는 지를 올해 증명하고 있다.

“자존심 버린 지 오래다. 그라운드 위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할 뿐이다.” 장원삼의 이야기다. 과거 걸어온 화려한 길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방출 선수’라는 꼬리표가 현재와 미래까지 좌절 속으로 담그진 못한다. 올 시즌 30대 중후반의 베테랑 선수들이 보여주듯 끝은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