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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투수가 공을 놓는 순간부터 0.1초 동안 타자의 눈이 뇌로 공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그 다음 0.075초 동안 공의 속도와 궤적을 계산해 칠지 말지 0.025초 동안 결정한다. 만약 친다면 어떤 스윙을 할지 0.025초 동안 선택하고, 그 다음 0.025초 동안 뇌에서 스윙을 시작하라고 다리에 신호를 보낸다. 결국 좋은 타격의 출발은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부터 0.1초간의 짧은 시간에 움직이는 빠른 공을 제대로 보는 능력이자 시력이다.
야구선수에게는 일반적 시력보다는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정보를 읽어내는 동체시력이 더 필요하다. 슈퍼스타일수록 이것이 높게 나온다. 한창 때의 이승엽은 유난히 높은 동체시력을 자랑했다. 야구선수가 늙으면 발이 느려진다고 말하지만 눈도 나빠진다. 그래서 예전에는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볼을 쉽게 골라내거나 배트 중심에 잘 맞히지만, 나이가 들면 공이 점점 배트 중심과 멀어지고 선구안도 나빠진다. 그래서 눈을 잘 보호해야 선수생활이 길어진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현역시절 신문을 거의 보지 않았다. 당시 선수들이 쉬는 시간에 주로 가던 영화관에도 가지 않았다. 어두운 곳에 오래 있으면 눈이 나빠질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KBO리그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 야구장을 떠난 뒤 봉사활동으로 더 바쁜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들려준 얘기다. 그는 현역시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했다. 그게 무슨 자랑이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예 책과 담을 쌓은 것은 아니었다. 도움이 되는 책은 항상 아내가 읽어줬다. 이유는 단 하나, 야구에 필요한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면에서 요즘 갑작스레 선구안에 문제가 생겼거나 이전보다 삼진이 많아졌다면 타격 자세의 이상 여부도 체크해봐야겠지만, 눈에 이상이 없는지도 꼭 살펴보기를 권유한다. 21세기는 스마트폰의 시대다. 모든 사람들이 손에서 놓지 않는다. 선수들도 원정버스와 숙소, 라커에서 시간 날 때마다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야구에 필요한 동영상을 보는 경우도 많겠지만, 시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전 어느 팀은 심야에 이동하는 버스에서 아예 선수들의 휴대전화를 몰수한 적도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인권침해지만, 귀중한 눈의 보호라는 측면에선 결코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