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건축디자이너 류아진 “포스트 코로나시대, 집이 바뀐다”

입력 2021-07-15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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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아진 건축디자이너.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예일대 출신의 건축디자이너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이라는 공간의 기능, 형태, 인식의 변화
뉴욕의 변화와 대응 통해 한국의 미래와 트렌드를 읽는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 시대를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할지 모른다고 했어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우리는 온전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미국 뉴욕에서 건축 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류아진(31)씨는 “코로나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많은 문제점들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았고, 이는 미래의 공간과 환경에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고 인류의 거주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도 예외일 수 없다.

뉴욕에서 수석 건축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류씨는 주상복합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 오피스 등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며 뉴욕 건축디자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류아진 건축디자이너.


“열세 살 때 한국을 떠나 캐나다 밴쿠버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더 큰 무대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성장하고 싶어 2008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 진학했습니다.”

류씨는 어린 시절부터 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와 함께 했던 유럽일주 여행은 어린 류씨에게 건축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마주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어린 저에게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안겨 주었어요. 성당 실내에 들어섰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압도감에 매료돼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공간이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 그리고 예술과 조화로운 공간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 결국 건축에 대한 공부로까지 이어진 것이죠.”

2011년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신청해 독일 베를린에 있는 베를린예술대에서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뉴욕에서 아틀리에 실무경험을 쌓으며 주택, 아파트 리노베이션을 담당했다. 개념 설계부터 실시 설계까지 참여하며 도면 그리기, 렌더링, 클라이언트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건축디자이너로서의 실무적 기초를 닦았다.




이후 자신만의 건축 철학과 세계관을 깊이있게 연구하고 확고히 하고자 2016년 예일대 대학원 건축학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류씨의 재능은 재학시절부터 일찌감치 빛을 발하며 업계의 인정을 받았다. 프리츠커 상을 받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지도 아래 미국 감옥에 관한 연구와 디자인을 했으며 류씨의 작품은 ‘프랭크 게리: 빌딩 저스티스’라는 다큐멘터리 필름에 소개되기도 했다.

졸업 후 핀크 앤 플랫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맡아 진행했던 이스트 햄프턴 하우스 프로젝트는 2019년 미국 건축가 협회(AIA)로부터 건축가가 지은 우수한 건축물에 시상하는 롱 아일랜드 건축상을 받았다.

2021년 로아트(ROART)에서는 류씨가 이끈 디자인팀의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 디자인이 LA 시장이 주최한 국제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미국의 유명 잡지사 메트로폴리스 매거진과 드웰 등 여러 매체에 소개됐다.

constellations.


건축디자이너로서 류아진씨는 코로나 이후 뉴노멀의 뉴욕에 대해 관심이 많다. 확실히 코로나로 인해 미래의 공간은 지금과 사뭇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뉴욕이라는 도심의 변화와 대응을 통해 한국 건축디자인의 미래와 트렌드를 예상하고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를 발산해야 할 시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류아진씨로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뉴노멀의 뉴욕’에 대해 들어봤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기존에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 재평가하게 됐어요. 팬데믹 사태가 도시와 건축의 새로운 시대적인 의미를 찾아가게 해주는 촉진제가 된 것이죠.”

류씨는 “코로나19 이후 뉴욕의 주거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두려움이 공간과 삶을 바꿔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모일 수 없게 됐고 공공장소는 위험한 곳이 돼버렸다. 거리는 언제 바이러스를 맞닥뜨리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편한 곳으로 변모했다.

“팬데믹 이후 주거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집’이라는 공간의 기능, 형태, 인식에 대한 변화가 생겼어요. 뉴욕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집은 더 이상 주거 목적만이 아닌 다양한 용도가 결합한 공간으로 변모하게 됐죠.”

new prison.


주거라는 전통적인 집의 목적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였다. 집은 이제 일과 회의를 하고, 수업을 듣고, 운동과 취미생활까지 해야 하는 일상의 중심적인 공간이 된 것이다. 류씨는 “건축산업 역시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어들었다. 실제로 더 길고 복잡해진 공사 절차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집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거 문화와 환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류씨는 ‘방음’, ‘더 넓은 작업공간’, ‘다목적 공간’을 꼽았다. 침실의 경우 서로 떨어뜨려 배치해 분할된 작업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세계의 중심도시인 뉴욕은 타 도시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월등히 높아 개인에게 주어지는 공간이 넉넉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는다. 류씨는 “공간은 더 이상 한 가지 모습만을 띄지 않을 것이며 유연성이 강조된 주거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벽은 더 이상 고정된 구조물이 아닌 다양한 공간적 구조와 용도에 맞춰 유연한 움직임을 가진 시스템의 역할을 해야 한다.

fink & platt에서 참여한 295 greenwich 프로젝트.



류씨는 295 그리니치 아파트 리노베이션 설계의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가장 고려되었던 부분은 공간의 재편 가능성이었다. 서재는 복합 형태로 제작된 붙박이장 안에 책상, 책장, 수납공간을 모두 갖춰 열고 닫음에 따라 공간의 성격을 다르게 했고, 서재로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사용하게 해 다양한 기능을 충족시켰다.

거실로 통하는 벽은 미닫이 시스템을 도입해 서재와 완전히 연결되거나 분리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필요에 따라 여러 개의 별도 공간이 되기도 하고 하나의 넓은 공간이 되기도 하는 ‘다변화적 공간’이 디자인의 핵심이었다.

야외활동이 제한됨에 따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주거 공간 내에서 자연과 햇살을 누릴 수 있는 ‘나만의 공원’ 역할을 하는 테라스, 마당, 정원 등의 공간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지은 850 메트로폴리탄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메트로폴리탄 프로젝트.



“아파트 안에 큰 규모의 중정(中庭)을 만들어 입주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외부공간을 구성했고 정원을 조성해 커뮤니티를 위한 쉼터를 제공했어요. 또 아파트와 단독 주택의 장점을 결합한 2층 듀플렉스 세대에는 개별 테라스를 두어 프라이빗한 외부 공간을 조성했죠. 듀플렉스의 테라스는 나만의 정원을 꾸미거나 야외 주방을 설치해 요리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32세대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공간 전환의 중요성을 고려해 디자인했으며 개인 생활방식에 맞춘 다양한 옵션을 제시했어요.”

류씨는 “코로나 팬데믹은 개인의 주거문화, 공간뿐만 아니라 도시의 공공장소에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이러한 공공장소는 개인 일상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카페, 매장 등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roart에서 참여한 850 metropolitan(milk factory) 작품.



“상업시설들이 점차 영업을 정상 재개하면서 뉴욕 도심 곳곳에 작은 변화들이 생겨났어요. 뉴욕시는 단기간 내 실행 가능한 소규모 개선책으로 식당을 도로 주차 공간까지 외부확장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길 곳곳에는 야외 식사를 위한 부스들이 나열되어 지어졌고, 내부의 기능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새로운 가로경관을 형성했죠. 밀폐된 공간이 주는 불안감과 공공장소의 한계를 이해하고 반영해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빌 드 블라시오 뉴욕 시장은 차도를 일부 통제해 40마일가량의 새로운 보행자 공간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100마일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뉴욕의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공원 외에 새로운 야외 공간을 조성하고 식사는 물론 거리 예술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도시환경을 창조하려는 시도이다.

류씨는 “차가 중심이 아닌 걷기 좋은 도시에 대해 고민하고, 익숙했던 도시를 재발견하는 좋은 실험이자 시작점일 될 것”이라며 ‘뉴노멀 뉴욕’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금이야말로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의 변화와 대응을 통해 한국의 미래와 트렌드를 예상해보고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를 발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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