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알던 마지막 타석, 작별인사는 홈런과 V1…역시 KT 상징 [아듀! 유한준①]

입력 2021-11-25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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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데뷔경기 무대이자 프로 첫 안타, 첫 타점을 신고한 곳. 지겹도록 섰던 수원 야구장이 유독 낯설게 다가왔다. 익숙한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기 위해 대기타석부터 고개를 찬찬히 돌렸다. 아무도 몰래, 혼자만 알던 자신만의 마지막 타석. 유한준(40·KT 위즈)이 팬들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는 홈런, 그리고 창단 첫 정규시즌-한국시리즈(KS) 통합우승이었다.


●“너, 내년에 자신 있니?”

유한준은 24일 구단을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2004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해 2005년 1군 데뷔, 올해로 프로 18년차 시즌을 보냈다. 대기만성과 꾸준함의 상징답게 불혹의 나이에도 팀의 4번타자로 중심을 잡았다. KT가 창단 첫 통합우승을 차지하는 데 지분이 상당했다.

발표 직후 연락이 닿은 그는 “홀가분하다.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했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너무 감사하다”고 밝혔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통합우승이라는 결과가 없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고. 그만큼 V1이 유한준에게 크게 다가왔다.

“우리팀이 더 강해지려면 지명타자 자리에서 20!30홈런을 칠 선수가 필요하다. 감독님 덕에 4번타순으로 시즌을 보냈지만,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내년에도 풀타임 뛸 수 있니?’ 자신이 없더라. 지명타자이면서 풀타임을 못 뛴다면 결국 찬스 때 대타 한 번 정도가 역할이다. 후배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우승 확정 후 (박)경수와 껴안으면서 ‘해냈다’ 싶었다. 이후 선수들에 헹가래를 쳐주는데, 세 번 왔다갔다 할 때 마음을 완전히 먹었다.”

올해 KT의 우승 스토리는 그 자체로 드라마였다. 정규시즌 144경기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삼성 라이온즈와 타이브레이커(순위 결정전)를 치렀으며, 극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KS에서도 베테랑들의 활약이 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만의 마지막 타석, 그렇게 나온 진심의 손짓

유한준의 마지막 역시 영화였다. 10월 28일 수원 NC 다이노스전. KT의 2021시즌 마지막 홈경기였다. 우승을 한다면 은퇴를 마음먹었던 유한준이기에 ‘어쩌면 수원구장 마지막 경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대 시절이던 2005년 7월 7일 수원 한화 이글스전서 1군 데뷔전을 치르고 8월 13일 한화전서는 안타와 타점을 신고한, 가장 의미 있는 구장에서 고향팬들과 마지막 인사. 4번 지명타자로 나선 그는 첫 3타석에서 1안타를 기록한 뒤 4-2로 앞선 8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 마지막일지 모를 타석에 들어섰다. 결과는 좌월 홈런. 홈팬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유한준은 평소답지 않게 관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세리머니로 인사를 보냈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걸 나만 알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찬찬히 야구장 전경을 한번씩 둘러보면서 뭉클했는데 거기서 홈런이 나왔다. 홈런을 많이 친 건 아니었는데 베이스를 돌며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팬들을 향한 손인사도 나도 모르게 나왔다. 잠재된 감사함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자기관리의 화신이 유니폼을 벗는다. 유한준은 “이제 맥주 한잔 시원하게 먹어야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내년 보직이 결정되진 않았지만 프런트 쪽에서 시야를 넓힐 가능성이 높다. 유한준은 “30년간 덕아웃과 그라운드에서만 야구를 봤다. 이제 한발 물러나서 시야를 넓히는 계기로 삼고 싶다. 성격상 준비가 안 되면 시작하지 않는 편인데, 지도자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소양을 쌓을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유한준은 24일 구단 사무실을 찾아 은퇴 의사를 전달하고, 야구장 곳곳을 둘러봤다. 데뷔 처음으로 기자실에도 올라왔다고. 그는 “기자실에서는 곳곳이 다 보이더라. 우리 야구장 정말 절경이더라”라고 했다. 그 절경을 완성했던, 언제나 묵묵히 수원KT위즈파크를 빛냈던 유한준이 작별인사를 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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