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가 사람처럼 느껴졌다”…허정인의 슈베르트&브람스 [나명반]

입력 2022-01-06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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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로 연주한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가곡들
사람처럼 노래하는 첼로, 가사가 들리는 듯한 환청
이 음반에 대한 가장 간결한 감상은 ‘첼로의 노래’가 될 것이다.

타이틀은 이 음반이 두 명 작곡가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알려준다. 슈베르트, 그리고 브람스다.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닮은 데라고는 눈에 안약을 넣고 들여다봐도 찾아보기 힘든 두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확실히 마주치는 지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노래, 그 중에서도 가곡이다.

이 음반은 총 15트랙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에서 가곡이 9곡이나 된다. 이쯤 되면 ‘첼로의 가곡집’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남은 6개의 트랙은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물론 첼로로 연주했다)로 채웠다.

허정인의 첼로 연주가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첼로가 연주한 가곡’이라기보다는 ‘사람처럼 노래하는 첼로의 가곡’이라는 점이다.

이런 것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예를 들자면 첼로의 소리가 사람의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물론 쉼표마저 성악가의 호흡처럼 느껴지곤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첼로가 정말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첫 곡 ‘Wie Melodien zieht es mir(나를 사로잡는 멜로디처럼-브람스)’를 듣고 ‘Minnelied(사랑의 노래·브람스)’와 ‘Liebestreu(사랑의 진실·브람스)’를 지나 ‘An die Musik(음악에 붙임·슈베르트)’와 ‘Die Forelle(송어·슈베르트)’ 즈음에 이르게 되면 첼로의 멜로디에서 가사가 들리는 듯 환청에 빠지게 된다.

‘Litanei auf das Fest Allerseelen(모든 영혼들을 위한 기도·슈베르트)’, ‘Sapphische Ode(사포 송가·슈베르트)’에서는 아예 ‘의인화된 첼로’를 마주하는 기분마저 든다.

허정인은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는 가곡을 연주할 때와 소나타를 연주할 때의 스타일이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인데, 확실히 가곡에서는 한 음 한 음이 성악가의 딕션처럼 명징하게 들려온다. 피아노 역시 첼로가 아닌 성악가를 반주하는 듯 뒤로 물러나 첼로의 사운드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음반의 피날레는 ‘Wiegenlied’. 음악 교과서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브람스의 자장가다. 음반의 마지막 곡으로 자장가를 선택한 데에서 허정인의 재치가 느껴진다. “이제 주무셔도 됩니다”라는 것일까. 물론 이런 멋진 음반을 듣고 나서 잠이 올 리가 만무하겠지만.

열두 번째 트랙에 실린 슈베르트의 가곡 ‘Litanei auf das Fest Allerseelen(모든 영혼들을 위한 기도)’는 여운이 짙고 길었다.

“모든 영혼들이여 편히 쉬시라
두려운 고통은 다 지나갔고
달콤한 꿈도 끝났네
이 세상에서 떠나갔네”

요즘처럼 삶이 고단한 시절이 얼마나 있었을까. 첼로의 ‘노래’가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까칠해진 마음의 표피를 매만져준다.
마음에서 물 한 방울이 ‘툭’하고 떨어졌다.

※ 이 코너는 최근 출시된 음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코너의 타이틀 ‘나명반’은 ‘나중에 명반이 될 음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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