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미 TIMEPASS “추억의 가루들이 반짝반짝 빛나네” [나명반]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서울대 음대 관현악과 교수)의 새 음반이 나왔다.
4명의 작곡가, 5개의 작품, 총 11개의 트랙. 김다미의 음반 ‘타임패스(TIMEPASS)’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추억’이다.

김다미의 첫 음반이 나온 지 4년 만이다. 2018년 10월에 발매됐던 첫 음반은 슬로박 필하모닉과의 꽤 묵직한 드보르작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반면 ‘타임패스’는 툭 치면 날아오를 것처럼 가볍다. 김다미가 20대에 사랑했고, 즐겨 연주했던 소품들을 모아 담았다.

김다미는 “여가 시간에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고 싶거나, 딱히 해야 할 일이 생각나지 않을 때, 대중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한 소품들로만 이루어진 이 음반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런 음반이다.

김다미는 보기 드문 중량급의 소리를 가진 연주자이다. 두텁고 묵직한 펀치력을 지녀 듣는 이의 마음판에 퍽퍽 주먹자국을 내곤 한다.
그런데 이 음반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김다미 사운드’가 자주 증발한다. 조명의 단계를 스윽 올린 것처럼 빛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한결 밝고 가벼워진 것이다. 김다미 특유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나니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음반의 첫 수록곡인 차이콥스키의 ‘Souvenir d‘un lieu cher(소중한 곳에 대한 추억), Op.42’만 들어봐도 “아, 이런 느낌”하고 감이 올 것이다.
조지 거쉰이 작곡한 ‘포기와 베스’를 기반으로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이고르 프롤로프가 편곡한 콘서트 판타지에 이르면 이제 슬슬 눈치를 채게 된다. 음반 속 김다미의 연주가 소환해낸 추억의 가루들이 마음의 바다 위에 뿌려져 윤슬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추억의 장면 어딘가 즈음. 그 시절의 ‘나’와 그 시절을 기억하는 ‘나’. 두 명의 ‘나’가 교차되는 지점을 정확하게 김다미의 활이 지나간다. 문지영의 피아노도 아련하기 그지없다.

김다미는 추억의 시간을 묶어두고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오간다. 두 개의 시공간이 평행선을 달라다가 만나고, 모자이크처럼 뿌려졌다가 다시 합쳐지지만 조금도 이질감이 없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물론 김다미의 절정에 다다른 기량 덕이다.

이 음반을 듣는 또 하나의 재미는 김다미가 직접 쓴 해설을 읽는 것이다. 음악 해설이라기보다는 곡 하나 하나에 김다미의 개인적 추억과 사연을 붙인 ‘소품해설’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싶다. 김다미의 바이올린 음색만큼이나 글이 따뜻해 읽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PS. 음반의 마지막은 비탈리의 ‘샤콘느’로 장식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별칭이 붙은 곡이지만 김다미는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달리 슬픔을 거대화하지 않는다. 처연하지 않은 샤콘느. 슬픔마저 추억이 삼켜버린 연주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 이 코너는 최근 출시된 음반, 앨범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코너의 타이틀 ‘나명반’은 ‘나중에 명반이 될 음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