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잃은 ‘리멤버’, 이성민의 열연만 남았다 [리뷰]

입력 2022-10-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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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오락영화로서의 재미도 줘야하는데 친일파 처단을 다룬 영화이니 만큼 메시지도 담아야겠고. 바쁘다. 바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양쪽 모두 놓친 형국이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리멤버’(감독 이일형, 제작 ㈜영화사 월광)의 이야기다.

평생의 원수를 찾아 복수하려는 80대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주연한 2015년작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를 리메이크했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몰살한 나치 군인이라는 원수의 설정을 친일파와 일본 장교 등으로 수정했다. 특수 분장을 통해 노인으로 파격 변신한 이성민과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가담하게 된 20대 청년을 연기한 남주혁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너절한 플래시백과 대사 등으로 몰입을 떨어뜨리는 영화가 아쉬움을 남긴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메시지 따로, 오락 따로

영화는 원작을 기본적 설정만 가져왔을 뿐 이야기는 전혀 다른 장르와 방향으로 풀어냈다. 차분한 톤으로 진행되는 원작과 달리 스케일을 키운 것은 물론, 카체이싱과 액션 등의 오락적 요소를 더해 상업영화로서 매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런 오락적 요소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가닿지 못하고 따로 논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은밀하고 치밀한 일생일대의 복수를 위해 빌린 차량이 스포츠카인 페라리라는 점이다. 페라리로 인해 카체이싱을 보는 오락적 재미는 증가했을지언정 주인공의 진정성에는 마이너스가 됐다. 후반부 등장하는 대부업체 조직과 친일파의 수족들이 펼치는 액션신도 오직 ‘액션을 위한 액션’으로 느껴진다.

물론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와 친일파 처단 등을 다루는 영화가 무조건 무겁게 표현될 필요는 없다.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오락적 재미까지 모두 살린 2015년 ‘암살’(감독 최동훈)이 대표적인 예다.


● 너절하고 지루한 플래시백과 대사들

오락적 요소에 치중하느라 이야기로 관객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영화는 메시지를 배우들의 너절한 대사를 통해 전달하려 한다. 이성민이 복수의 이유를 유언처럼 영상에 주절주절 남기는 장면은 그렇다 치더라도 영화의 결말에서 마지막 선택을 앞둔 이성민을 설득하려는 남주혁의 장광설에 가까운 대사는 듣고 있기 부끄러울 정도다. 필요이상의 플래시백 장면들도 지루하기 짝이 없다. 98분이었던 원작의 간결한 러닝타임이 128분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주인공의 치매 설정 또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액션신 없이도 치매라는 설정만으로도 스릴과 서스펜스를 살려냈던 원작과 가장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치매라는 설정을 들어냈어도 충분히 돌아간다.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치매라는 소재에 담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이 영화에서는 굳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너절한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하니 말이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노인이 된 이성민의 열연

그럼에도 이성민만은 빛난다. 특수 분장으로 완성한 겉모습뿐만 안이라 가래 낀 목소리부터 굽은 목, 걸음걸이까지 80대 노인의 모습을 완벽히 연기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초반 인자하고 젊은 감각을 가진 ‘힙스터’ 할아버지의 모습부터 극이 이어질수록 서서히 냉혹한 처단자의 모습까지 캐릭터의 다층적인 얼굴까지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성민의 복수의 여정에 동행하게 되는 20대 청년을 연기한 남주혁의 연기 또한 나쁘지 않다. ‘조력자’ 롤이 분명해 보이지만 통째로 들어내도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위치가 애매해졌다. 친일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 시위에 나서고 있는 아버지를 뒀다는 설정도 이성민과의 공통점을 찾기 위한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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