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묵직하고 깊이 있는 웰메이드 재난 스릴러의 탄생 [리뷰]

입력 2023-08-01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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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이병헌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걸출한 연기, 삭막한 디스토피아를 리얼하게 그려낸 뛰어난 미술과 프로덕션,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이야기 등 3박자를 고루 갖췄다. 묵직하고 깊이 있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 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한국 재난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9일 개봉하는 영화는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를 기반으로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에 몰려든 사람들의 생존기를 그린다. 주민 대표 역의 이병헌, 신혼부부를 연기한 박서준과 박보영, 부녀회장 역의 김선영, 외부인과 주민의 경계에 선 박지후 등 극한에 상황에 높인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흥미 위주의 오락영화가 아닌 깊이 있는 웰메이드 재난 스릴러로 완성했다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재난영화의 탈을 쓴 사회드라마

영화는 모든 것이 무너진 가운데 강추위까지 덮치자 황궁 아파트에 몰려드는 외부인들을 받아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로에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초반부터 관객들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생존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뿐만이 아니다. 외부인 유입에 대한 문제를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공동 생존’을 위한 규칙을 만드는 등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놓는 듯 보였던 것들이 점점 비인간적인 것들로 변화하는 과정들은 관객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한국이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던 ‘가상의 세계’를 그리지만 그 안에서 펼쳐진 일들은 그 어떤 영화보다 리얼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특정인물을 극단적인 악이나 극단적인 선으로 내몰지도 않는다는 점도 돋보인다. 적당히 이타적이면서 적당히 이기적인 캐릭터들을 위해 모든 관객들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만든다.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압도적 프로덕션

영화는 다른 재난물들과는 달리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대규모의 재난상황이나 아슬아슬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시퀀스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울 한복판을 휩쓰는 길지 않은 대지진의 순간과 엄청난 재난 이 휩쓸고 지나가버린 폐허가 된 황량하고 끔찍한 서울의 모습은 마치 진짜 재난의 한복판을 보는 듯 생생하고 사실감이 넘쳐 오히려 관객을 더욱 몰입하게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황궁아파트가 단순한 공간적 배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보인다는 점도 독특하다. 각자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보다 쉽게 감시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복도형 아파트만의 구조적 특징을 영화의 이야기에도 적극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생존자들의 유일하고도 아늑한 쉘터가 되어주는 아파트가 어느 순간 섬뜩한 감옥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의 미(美)친 연기

더 이상 ‘연기 잘한다’는 칭찬을 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매 작품 마다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이병헌은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관객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그가 연기하는 영탁은 아파트에 발생한 화재를 순식간에 해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해 황궁 아파트의 주민 대표로 발탁되는 인물이다. 주민들의 안위를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추진력과 희생정신으로 모두의 신뢰를 얻은 그는 아파트 내의 권력을 얻게 되고 위기의 상황을 마주하면서 숨 막히는 긴장감을 불러온다. 가장 진폭이 큰 캐릭터의 두 얼굴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늘 사랑스러운 연기만 보여주던 박보영 역시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주민들과 남편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는 간호사 출신 주민 역을 맡아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캐릭터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만 박보영의 남편을 연기한 박서준의 연기는 다소 아쉽다. 이병헌처럼 전반과 후반의 낙차가 드러나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병헌의 연기력과 비교돼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후반부 감정을 폭발하며 이병헌과 대치하는 장면에서는 연기력이 노골적으로 비교된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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