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Ms.박의라이브갤러리]공공의꽃된공공미술갤러리도대중속으로

입력 2008-05-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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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금천구 한 동네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매일 하교 후에 모여서 자신이 꿈꾸는 마을을 주제로 발표한 뒤, 그 생각들을 토대로 벽에 그림을 그리고 타일을 붙여 직접 벽화를 제작하였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벽화로 아름답게 바꾼 어린 학생들이 수동적인 문화 수혜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제작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공공미술의 긍정적 효과를 엿볼 수 있다. 작가 박용석은 몇 년 전부터 작업실에서 벗어나 도시민이 거주하는 주택 옥상에 직접 찾아가서 그 곳 물탱크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도시민의 개인적인 공간이었던 옥상은 ‘살아 있는 갤러리’로 변신한다. 그는 이 작업을 ‘그린 드로잉(Green Drawing)’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초등학생들의 벽화 작업이나 박용석의 물탱크 작업은 미술 작품은 으레 갤러리에 있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갤러리 안 미술과 우리의 일상의 모습 사이의 경계 허물기는 오늘날 젊은 미술가들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이들 대부분은 실제 공간과 실제 시간에서 일어나는 우리네 삶의 경험을 미술 작품에 개입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갤러리에서 구경꾼으로서의 관람 경험을 실제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참여의 경험으로 변모시키기 위해서다. 어떠한 공공 미술가에게도 중요한 것은 따라서 ‘삶’과 ‘공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중’이 자리하고 있다.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역으로 갤러리는 대중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닫힌 공간일까? 꼭 그렇지만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 예로 최근 공공미술과 관련된 사업이 해마다 증가하고는 있지만, 그 사업들이 정작 실현되고 난 이후에는 관리 부족으로 흉물로 전락하여 도시의 미관을 해치고 있는 경우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실 예술과 일상, 갤러리 미술과 공공미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선을 뚜렷하게 그은 주범이 갤러리 공간의 폐쇄성 때문이라는 지적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갤러리가 비록 전시 공간의 자율성을 희생시키고 관람자의 경험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비난의 표적이 단순히 갤러리라는 지적은 그곳에서 계속 생산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과 도전의 가능성들을 너무나 쉽게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지적은 역사적으로 미술과 일상간의 경계 허물기의 아이디어 대부분이 갤러리에서 나왔다는 사실마저도 지나쳐버리게 만든다. 따라서 갤러리 미술이냐 아니면 공공 미술이냐에 대한 어떠한 과도한 옹호는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할 수가 없다. 오히려 대중은 갤러리와 공공장소 ‘동시에서’ 상호 소통하며 각각의 전시 공간이 요구하는 과정에 충실하게 참여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예술 작품이 궁극적인 행선지는 단순히 갤러리냐 공공장소냐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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