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천상병은3살,중광은5살,난7살이야ㅋㅋㅋ~”

입력 2008-05-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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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쩐다’, ‘대략난감’, ‘캐안습’, ‘즐’… 이 낱말을 안다면 신세대, 모른다면 구세대일까? 절대 아니다. 이 단어는 이외수 신간 ‘하악하악(해냄)’ 목차다. 그가 보여준 세상은 ‘킹왕짱, 알흠답고 놀라운 세상’이며, 그가 ‘하악하악’을 사용할 땐 ‘두루마기를 휘날리면서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기분’이다. “얼굴은 전근대적이지만 의식은 미래지향적”이라고 껄껄 웃는 이외수, 인터넷 용어를 맛깔스럽게 사용한 문장을 접하면 젊은 감각이란 나이와 무관하단 사실을 알게 된다.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글을 ‘하악하악’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다. 3월 24일 창간 후 2개월을 맞이한 스포츠동아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유유자적하는 문인, 젊은 ‘옵빠’ 이외수에게 달려갔다. 지금부터 이외수의 살아있는 감각, 독자들과 오랫동안 소통하는 비법을 엿볼 수 있는 스포츠 동아 B기자의 ‘풍류(風流) 만만, 사심(私心)가득 인터뷰’가 진행된다.》 B기자 : 선생님 읽어보시라고 창간호부터 신문을 챙겨 왔어요. 속 보이는 게 제 기사가 있는 신문만 들고 왔어요. 이외수 : 하하하하하! 크크크크크! (인터뷰 내내 작가는 함께 웃게 되는 중독성 강한 웃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고마워요. B기자 : 선생님을 항상 ‘기인’이나 ‘도인’ 이런 식으로 지칭하는 것에 뭐랄까 전 좀 거부감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각자의 색깔로 평범하게 사는 것뿐인데, 독특한 현상으로 만드는 게 싫었거든요. 선생님은 알려진 모습도 있고, 남편, 아버지, 친구로서의 모습이 다 있잖아요. 가장 편안한 모습은 어떤 거죠? 이외수 : 빈둥빈둥 놀 때…그러니깐 세상만사 다 잊어버리고 천하를 다 갖고 사는 것! 그럴 때가 있지. (작가는 ‘빈둥빈둥’이라고 말할 때 느릿느릿 발음했다.) 세상만물이 다 존재해도 그저 나 혼자 환∼하게 , 빈둥빈둥… B기자 : 감정이 충만한 상태예요? 항상 찾고 계세요? 이외수 : 그렇게 되려고 치열하게 살았다 할 수 있죠. 젊을 때 고생은 그래서 겪었고… B기자 : 고생이 역설적으로 추억이 되지 않나요? 이외수 : 나처럼 살면 뒤돌아보고 싶지 않지. 제대로 괴로우면… 몽땅 간직하고 있는 거야. 아름다운 거름이 돼서 다 삭아버렸지. 남들 놀러 다닐 때 난 끔찍하게 라면 한 그릇도 못 먹고 매일 방구석에서 쫄쫄 굶고 있었는데… 비참해서 벽에 머리를 찧고 울고, 거리에서 술 먹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고… 추억이 되지 못하지. 끔찍한 외로움에 몸부림치면 돌아보고 싶지 않아요. B기자 : 선생님의 괴로움이 글 저쪽에 있잖아요. 이외수 : ‘세월은 흐르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고 교육대학 입학식 때 학장님이 던진 첫 마디였지. 흘러간 과거도 현재 내 앞에 쌓여있어요. B기자 : 옛날 베스트셀러 목록을 봤는데요. 1988년 연간 순위 8위에 선생님 시집이 있더라고요. 이외수 : 하하하. ‘풀꽃 술잔 나비’인가? B기자 : 아니요. ‘오늘 다 못 다한 말은’ 요. 좋은 감정도 둔감해지는데… 오늘 베스트셀러에 올라도 그때처럼 좋은가요? 이외수 : 직업이 작가인데, 그거 가지고 밥 먹고 사는데… 책이 안 팔리는 것은 재미없고 외면당했단 뜻입니다. 독자가 있는 작가인가 없는 작가인가는 의미가 각별하다고 봐야죠. B기자 : 독자가 많지 않아도 자기 예술 세계를 지키며 쓸 수 있잖아요. 그럼 선생님은 노선을 달리 한 건가요? 이외수 : 축구로 얘기하면 관중을 몰고 다니는 선수인가 외면당하는 선수인가에 따라 메이저에서 뛰느냐 마이너에서 뛰느냐 차이가 있겠죠. 기량이 어느 정도인가 대번에 드러나잖아요. 아직도 메이저에서 뛰고 있단 것은 그 기량을 인정받고 있는 거니깐 어떤 경우에서는 좋은 거죠. 스포츠 신문이니까 딱 스포츠로 예를 들잖아? 껄껄껄. B기자 : 여전히 처음처럼 즐거우시네요. 이외수 : ‘하악하악’에 제가 시간이 지나면 익는 음식이 있고 썩는 음식이 있는데, 사람도 마찬가지인 걸 표현했습니다. B기자 : 그걸 선생님은 ‘선택’이라고 하셨죠? 이외수 : 그렇죠. 썩은 작가한테 오래 붙어있는 독자는 없어요. 변화란 ‘익어간다’라는 뜻이죠. 작가의 작품도 발효되고, 독자와 작가의 관계도 발효되고… B기자 : 선생님은 계속 발효 중이네요? 이외수 : 바로 그게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죠. B기자 : 선생님 글은 ‘치유’ 기능이 강해요. 괴로울 때 ‘이걸 풀어야지’ 해서 선생님 책을 집잖아요. 막상 독자야 치유되지만 선생님은 쓰실 때 고통스럽지 않나요? 이외수 : 아파한 자가 아픈 자를 알잖아요? 독자와 작가가 서로 같이 아프지 않으면 치유력을 가진 글은 못 쓰죠. 제가 한 때 ‘예술에는 무통분만이 없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아픔을 겪어야만 예술이 나오고, 예술의 궁극적 역할도 위로입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자, 이미 겪은 자가 아니면 내 글에 공감 못합니다. 온실형 화초는 내 글 이해 못해요. 제 독자는 다 괴로움을 겪어본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정신적으로 아파본 사람들이죠. B기자 : 혹시 ‘소피아 코폴라’가 만든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4)란 영화 보셨나요? 이외수 : 못 봤어요. B기자 : 그 영화에서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대화를 해요. 빌은 중년의 배우인데 광고를 찍으러 일본에 갔고, 스칼렛은 음악밴드 하는 남편을 따라 일본에 가죠. 스칼렛은 남편은 활발하게 공연 준비를 하는데 여자는 얘기할 곳도 없고 울적해하다가 이국의 바(Bar)에서 우연히 빌을 만났고, 무턱대고 물어봐요. ‘나이가 들면 더 나아지나요?’ 남자의 대답이 “글쎄…글을 써라”였던 것 같아요. “자신에 대해 알아갈수록 흔들리지 않게 된다”고 말했던 것도 같고… 이외수 : 인품에 따라 다른데… 나이 들어서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괴로움이 더 커지겠죠. 비인간적으로 변모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들수록 많은 것을 비우는 사람들은 그만큼 편합니다. B기자 : 어떤 이들은 어릴 땐 애늙은이라고 생각하다가다도 정작 나이가 들면 어른이 안 되려고 떼를 쓰기도 하잖아요? 이외수 : 알려고 애쓰기보다는 느끼려고 애를 쓰고, 느끼려고 애쓰기보다는 깨달으려고 애쓰는 인생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풍부하게 느끼고 깨닫는 데에 행복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월감을 ‘앎’에다 두고 있어요. 머리 좋은 놈이 우수한 놈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제도권 교육이 그렇게 만들었죠. 많이 깨닫고 느끼면 저절로 어린애가 돼. B기자 : 어린애가 된다고요? 이외수 : 중광 스님하고 나하고 천상병 선생님을 ‘삼대 기인’이다 뭐다 하는데… 우리 셋이 만나면 천상병 선생님은 3살! 중광 스님 5살! 난 7살! B기자 : 선생님이 왜 나이가 제일 많나요? 이외수 : 셋 중에서 제일 때가 묻었대. 하하하. 천상병 선생님은 천진난만하고 아주 순수하죠. (인터뷰 후, 작가는 천상병 시인이 생전 즐겨 앉은 의자에 앉도록 기회를 줬다.) 그 분들은 풍부한 감성으로 늘 탄복하고… 애들과 똑같아요. 느끼고 깨닫는 데에 망설이거나 조심하는 법이 없지. B기자 : 느끼는 게 너무 과하면요? 이외수 : 절제가 안 되고 과잉이 되는 건 여유와 거리가 있죠. 여백을 가질 필요가 있고,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면 돼요. 현실에 붙박여 있을 땐 보는 것마다 괴롭고 즐겁고, 과잉이 되거든. ‘자연’, ‘예술’, ‘종교’ … 보다 정신적인 것을 자주 접하고, 특히 명상을 하면 괜찮지. B기자 : 선생님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요. 전 맞춤법이나 순우리말을 좋아하고 자주 과잉 교정인간이 되는데요. ‘대중이 쓰는 언어가 맞는 언어야’라고 핀잔을 받기도 해요. 그래도 원칙이라는 건 있어야 하잖아요? 이외수 : 많이 쓴다고 옳다고 하는 것은 억지고, 사람의 입장에서만 언어를 보느냐, 언어 입장에서 언어를 보느냐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B기자 : 언어 입장에서 언어를 본다니요? 이외수 : 새로 태어난 언어나 잘못 통용된 언어. 그것이 반드시 역기능만 있는 게 아니고 순기능도 있습니다. 그것을 전문적으로 파악하고 연구하는 기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내가 이명박 대통령 영어교육정책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은, 먼저 한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보여준 다음, 영어에 대해서 그렇게 가치 부여를 하면 덜 화났을 거야. 엄연히 인류문화유산으로 모든 언어학자들이 큰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 나라 스스로 가치축소를 할 필요가 없어요. 특히 대통령이 나서서 그걸 무시하는 방식의 발언을 해서 못마땅했기 때문에 이민이나 가라고 할 정도로 과격하게 말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의 중요성을 정치하시는 분들이 인식을 해야죠. B기자 : 그런데 우리말을 사랑해도 전 ‘킹왕짱’, ‘짱이에요’ 이런 말 쓰고 싶을 때가 많은데요. 바른 말을 쓰려는 것과는 모순일까요? 이외수 : 내가 ‘하악하악’을 통해서 인터넷 용어를 썼습니다. 새로 태어난 말 중에서 나름 생명력이 있고 전달력, 그 특유의 맛이 있으면 난 씁니다. 쓰는 사람에 따라 언어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죠. 단, 애정을 가지고 잘 써야 되겠지. 이외수는 인터뷰를 마치고, 서재 노래방에서 김태화 ‘안녕’을 불러주었다. “의리가 끝내준다”는 전유성이 이외수가 강산에의 ‘라구요’를 즐겨 부를 때 설치해준 것. 인터뷰 중 목 상태가 좋지 않아 자주 기침을 했지만, “목을 긁어대든지 그래도 불러야 해”라며 기자를 감동케 했다. 독자와 함께 아파하고 독자와 함께 웃는 이외수, B기자도 시큼한 김치처럼 발효되는 신문을 바라며 감성마을의 여운을 기억했다. 화천=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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