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벌판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섰다.
한 명은 손을 대면 묻어날 듯한 흑의, 다른 한 쪽은 눈이 부실 만큼 흰 백의를 입었다. 멀리서 보면 두 개의 둥근 바둑알처럼 보였을 것이다.
생각보다 바람은 셌다. 두 사람은 내심 ‘괜히 나왔나’ 싶었지만, ‘녀석도 괴롭겠지’하는 한 조각 위안으로 마음을 애써 닦았다.
“또 너냐?” 흑의의 사내가 한껏 입술 한 쪽을 비틀며 말했다. 나름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일 테지만, 어쩐지 사흘 굶은 노숙객이 한 병의 소주를 사기 위해 손을 내미는 듯한 인상이었다.
“나도 또 나여서 유감인 참이다.”
백의의 사내가 말을 받았다. 잠시 상대방을 노려보던(눈알이 아팠을 것이다) 두 사람은 천천히 자신들의 병기를 꺼내 들었다. 흑의의 사내는 고색창연한 고검(古劍) 한 자루를, 백의의 사내는 짧은 쌍도를 양 손에 쥐었다.
“타앗-!”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실전> 흑이 먼저 1로 백 진영에 침입해 오자 백은 두 말 없이 백2로 뒷문을 걸어 잠갔다. 흑은 안에서 살든지 밖으로 뛰쳐나가든지 둘 중 하나다.
흑이 3으로 들여다 볼 때 <해설1> 백1로 이으면 흑은 얼씨구나 하고 2로 들어갈 것이다.
흑8까지 이건 흑이 살아도 너무 크게 살아버린다. 백의 안방에서 흑이 두 발을 펴고 앉아서는 ‘밥상 차려오라’고 큰소리를 치는 판이다.
<실전> 흑5는 국후 박정상이 후회한 수.
<해설2> 흑1이 무난했다. 백2로 이으면 흑3으로 호구쳐 모양을 잡는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7단 1974ys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