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가만난사람] BMX여성라이더박민이

입력 2009-04-03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날개가없어도하늘끝까지…‘얼짱라이더’두바퀴로날다
“민이야! 기자님 오셨다. 얼른 나와라.” 코리아익스트림바이크연맹 이윤호 이사의 말에 간이 건물로 지어진 사무실 안에서 TV를 보다가 아쉬운 듯 일어서는 소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웨이브가 진 머리가 반쯤 등을 가리고 있었다. 인터뷰는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X-게임파크에서 있었다. 햇볕이 따갑고 살짝 바람이 불었다. 파라솔을 친 야외 테이블에 기자와 오늘 인터뷰 주인공인 박민이(19)양, 익스트림바이크연맹의 이윤호 이사와 남순현 씨가 둘러앉았다. ‘BMX계의 김연아’. 요즘 박민이 양을 졸졸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물론 본인이 자칭한 것은 아니고 언론이 붙여 주었다. ‘박민이’란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올 들어서의 일이니 그야말로 급작스럽게 떴다. 인천 서운고 3년생(이번에 졸업했다)이던 박양은 지난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2009 록스타 BMX(자전거 장애물 경주) 게임즈’에서 국내 여자BMX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뒤이어 지난달에는 캐나다 토론토의 ‘토론토 BMX 잼 2009’에서 1위에 2점차 뒤진 2위를 했다. 세상 사람들이 요 조그맣고 귀엽게 생긴 소녀에게 눈이 반짝 뜨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대체 박민이가 누구야?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좋아했나요? “아빠가 그러는데 저는 아기일 때도 유모차를 탄 적이 없대요. 대신 오토바이처럼 생긴 보행기를 밀고 다녔다죠. 3살 때인가는 네 바퀴 달린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7살 때 처음으로 어린이날 선물로 자전거를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BMX 레이싱용이랑 비슷하게 생겼었죠.” 집에서 조용히 노는 것보다는 나가서 자전거 타고 아이들과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걸 좋아했다.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비인형 따위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고, 대신 남자아이들처럼 변신로봇을 갖고 놀았다. 캐릭터가 좀 독특한 아이였군요? “동네에서 좀 놀았죠, 우하하! 남자애들하고 잘 놀았어요. 소꿉놀이 같은 건 안 했고, 탐정놀이 한답시고 만날 담장 넘어 다니다가 옷 찢어지고. 엄마한테 많이 혼났어요.” 승부욕이 강했을 것 같은데요? “주도권 잡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죠. 끌려 다니는 건 싫어요. 학교에서도 반장, 부반장을 늘 했죠. 반장이 못 되면 그 반장한테 끌려 다녀야 하잖아요. 수학여행 가서도 반장이 ‘줄 서’ 하면 일부러 안 서고 빙빙 돌아요. 그러다 선생님이 서라고 하면 그제서야 서죠. 못됐죠?” 연습은 주로 어디서 하나요? “여기(보라매공원)서도 하고 대만에서도 하고.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서 부상위험이 크거든요. 대만에 베어스바이크라는 회사에서 개인 후원을 해주고 계세요. 겨울에는 대만에서 훈련을 많이 하죠.” 하필 왜 위험한 BMX 종목을 하게 됐지요? 자전거 종목도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요. “아빠가 자전거 마니아세요. 처음에는 그냥 가족 여가생활 차원에서 함께 탔죠. 이것저것 했어요. 플랫(땅 위에서 하는 자전거 묘기종목)도 꽤 탔죠. 그런데 플랫은 아빠가 재미없어 하시더라고요. 하루는 아빠가 부천에 파크라는 종목이 있는데 가자고 하셔서 가보니 ‘이거다’ 싶었죠. 어렸을 때부터 아빠랑 시합에 많이 나갔어요. 요즘은요? 아빠는 시합 은퇴하시고 제 매니저 하시죠. 하하!” BMX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분류되지요. 꽤 위험한 종목인데 부상당한 적은 없나요? “몸에 멍드는 거야 항상 있는 일이니까 부상이라고 할 것도 없고요. 작년에 국제대회 나가려고 훈련 강도를 높이면서 두 번 다쳤어요. 위에서 내려가는 거 하다가 자전거가 뒤집어져서 손목이 부러졌고요, 또 한 번은 공중에서 한 바퀴 도는 연습을 하다가 발목을 심하게 삐었어요. 두 바퀴 욕심을 내다 잘못 착지를 했죠. 깁스를 하는 바람에 몇 달 자전거를 못 탔어요.” 대회 출전할 때 떨리지는 않던가요? “떨지요. 호주대회 때는 가기 전엔 괜찮았는데 막상 가니까 막 떨리더라고요. 밥도 못 먹겠고, 잠도 안 오고. (손가락으로 볼을 가리키며) 다크 서클이 여기까지 내려왔다니까요. 그런데 딱 경기가 시작되니까 긴장이 탁 풀리는 거예요. 1분 경기거든요. ‘1분만 있으면 다 끝난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편해지더라고요.” 호주대회에서 박 양은 경기 도중 두 번이나 넘어졌다. 3등이면 됐다고 여겨 시상식 내내 3등 트로피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1등이었다.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놀랐다. 두 번이나 넘어지고 어떻게 1등을 했지요? “스케일이 워낙 좋았거든요.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데 다른 선수들은 아무도 못 했어요. 사실 사전 연습 때도 일부러 그걸 안 했어요. 제 무기는 딱 그거 하나니까 일부러 안 보여준 거죠. 한 번 보는 것과 두 번 보는 건 다르잖아요. 시합 때 보여주려고 나름 작전을 쓴 거죠.” 박민이 양의 특기는 여자선수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가공할 점프력이다. 컨디션만 좋으면 2미터까지 붕붕 뜬다. 대개 여자선수들은 여성스러움을 강조해 아기자기한 잔기술을 구사한다. 어지간한 남자선수들을 능가하는 박 양의 ‘황당한’ 점프를 보면서 외국의 심사위원들은 ‘무슨 여자선수가 저렇게 높이 뜨냐’며 턱이 쩍 주저앉았다. 원래 겁이 없나요? “저 겁 진짜 많아요. 어려서 아파트 단지에 소독차가 오면 다른 애들은 ‘와’하고 따라가는데 저는 무서워서 집에 들어가 울고 그랬는데요. 지금도 다치는 거 되게 싫어해요. 처음에 자전거 타고 꼭대기 딱 올라가니까 너무 무섭더라고요. 이거 넘어지면 어디가 부러질 텐데… 막 상상이 되고.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많이 혼났죠.” 쌍꺼풀이 짙은 큰 눈을 끔벅이며 방글방글 웃는 모습이 꼭 인형같다. 152cm 키에 몸무게 48kg.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체구가 작은 BMX 프로다. 작은 키는 선수로서 장점인가요, 단점인가요? “일단 팔 다리가 긴 사람은 잘 부러져요. 보통 키가 크면 스타일이 좋다고 하죠. 같은 기술을 해도 부드러워 보이고. 그런데 제가 보기엔 뭐랄지 … 좀 허우적댄다는 느낌이랄까요. 작으면 단단하고. 그런데 저는 좀 길었으면 좋겠어요. 흐흐” BMX에도 기술이 많은가요? “그럼요. 몇 백가지는 될 걸요? 경기 때 다 하는 건 아니고요. 보통 점프 한 번 해서 2∼3가지 기술을 콤보로 하죠. 1분 경기에 30개 정도 기술이 나와요.” 박 양의 주특기는 앞서 말한 대로 여자선수답지 않은 하이 점프다. 여기에 공중에서 핸들을 아래로 꺾으면서 구사하는 턴다운이 좋다. 초특급 고난이도의 기술은 아니지만 일단 높이 떠야 가능하다. 옆에서 이윤호 이사가 “남자선수들도 안 되는 사람이 많다”라고 했다. 박 양은 7월 독일 세계선수권대회가 최우선 목표다. 지금까지 출전했던 대회들보다 전통이 깊고 규모가 크다. 물론 우승을 노리고 있다. 다음 주에는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이후 미국에서 훈련한 뒤 독일로 날아갈 계획이다. 내년에는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한다. 박 양의 주 종목은 반구형 장애물에서 기량을 겨루는 파크지만 아쉽게도 아시안게임에는 레이싱 종목만 있다. 각종 장애물을 넘어 정해진 코스를 돌아야 한다. 7월 독일 대회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레이싱 훈련에 돌입한다. 파크에 비해 체력소모가 큰 종목이라 하루 2시간 이상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유명해지면서 팬들이 많이 생겼을 것 같은데요? “싸이월드에 일촌 신청하시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죠. 방명록에 격려 글도 써 주시고요. (남성 팬이 많지 않나요?) 여자는 아직 한 명도 못 봤어요(웃음). 주로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들이 많으세요. (이윤호 이사가 ‘연습장에 사인을 받으러 오는 분들도 많다’라고 했다)”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네요. 어떤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선수로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기량을 보여주고 싶어요. 순위권 안에 많이 들고 싶죠. 나중에 자전거를 못 타게 되면 코치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자전거 관련 사업도 하고 싶어요.”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에도 관심이 있나요? “그럼요. 송승헌, 권상우. 아유! 둘 중 고를 수 없어요. 잘 생겼잖아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깊이가 없어요. 너무 여자같이 생겨서. 카리스마가 안 느껴져요. 스포츠스타라면, 요즘엔 기아 타이거즈의 이용규 선수요. WBC에서 헬멧 부서진 선수. ‘진짜 운동선수’라는 느낌이 팍 왔어요. 승부욕이 대단한 거 같아요.” ‘BMX는 위험하다’라는 선입견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무턱대고 혼자 보호장비도 없이 하다가는 십중팔구 다치는 종목이다. 하지만 보호장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탄다면 의외로 안전하고 ‘폼 나는’운동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코리아익스트림바이크연맹(02-486-6094)에 연락하면 자세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평일에는 한가하지만 주말이 되면 BMX를 즐기기 위한 동호인들로 연습장이 바글거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박민이 양이 사진촬영을 위해 자전거를 끌고 파크 구조물에 올랐다. 두르르 경사면을 달려 내려오더니 이윽고 점프대를 차고 하늘을 향해 힘껏 날았다. 그것은 가까이는 7월 독일대회를 향한, 멀리는 자신이 그려놓은 내일을 향한 자전거 소녀의 신나는 비상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싸!’ 소리가 터져 나왔다. BMX란? 자전거 모토 크로스(Bicycle Moto cross)의 약자, 일반자전거보다 바퀴지름이 작은 자전거를 타고 벌이는 자전거장애물경기를 일컫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최초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