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신상옥‘성춘향’ 홍성기‘춘향전’ 대립

입력 2011-01-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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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감독의‘성춘향’

영화를 제작하거나 연출하는 이들에게 소재나 출발점이 되는 기획 아이템은 중요한 ‘기밀’에 속한다. 자신이 만들 영화의 소재와 기획 아이템을 섣불리 말했다가 자칫 다른 이들에게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똑같은 소재의 영화가 동시에 제작되는 경우, 해당 제작자와 감독은 치열한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61년 신상옥 감독과 홍성기 감독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다.

1961년 오늘, 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가 이사회를 열고 ‘성춘향’의 신상옥 감독과 ‘춘향전’의 홍성기 감독 사이의 갈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당시 영화가 개봉하려면 문교부에 제작 신고서를 접수해야 했고, 이는 반드시 제협을 거쳐 내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

제협은 이날 두 영화의 제작 신고서를 모두 자신들에게 내게 했다. 그런데 제협 조용진 회장이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만 문교부에 제출해 문제가 발생했다. 두 편의 모두 완성돼 1월 개봉을 앞둔 상황이었던 만큼 이 같은 행위는 갈등만 키우는 것이었다. 제협은 각각 두 영화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양분됐다.

사실 갈등이 시작된 것은 1960년 여름부터다. 신상옥 감독은 그해 7월9일 ‘성춘향’의 제작 신청을 먼저 했다. 이후 8월12일 홍성기 감독도 제작을 신청했다. 당대 최고의 흥행감독이었던 두 사람의 자존심 경쟁은 치열하기만 했다.

‘신춘향’과 ‘홍춘향’으로 불리며 시선을 집중시킨 두 감독은 각각 자신들의 부인 최은희와 김지미를 춘향 역에 캐스팅해 또 다른 화제를 모았다. 감독·여배우 커플이라는 화제에다 한국의 전통적인 미인으로 꼽히는 춘향 역으로 당대 톱스타들이 경쟁한다는 점에서도 관객의 기대가 컸다. 두 영화는 또한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표방해 한국영화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은 폭력 사태로까지 번졌다. 1월21일 밤 신상옥 프로덕션 사무실에 괴한이 난입해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 국제극장에서 상영 중인 ‘주마등’이라는 영화와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이복형제’라는 또 다른 작품의 포스터를 둘러싼 대립이었다.

영화계에서는 ‘성춘향’이 명보극장에서, ‘춘향전’이 국제극장에서 개봉한 것과 관련해 양측의 갈등이 폭력으로 비화한 게 아니겠느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양측의 대립에서 승리한 쪽은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었다. 당시 서울 지역 37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니 그 폭발력은 상당했다. 이후 신필름이 되는 신상옥 프로덕션의 업계 영향력도 커졌다. ‘성춘향’은 당시 영화 해외판매가로선 거액인 5000달러에 일본으로 수출돼 현지 6개 도시에서 개봉됐다. 아시아영화제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됨으로써 그 영화적 완성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춘향전이란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든 홍성기 감독의 명성은 후배인 신상옥 감독 못지않았다. 두 사람은 당대 톱스타와 결혼해 화제를 뿌렸고 이후 이혼의 아픔도 함께 겪었다. 이래저래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스타감독들이었다.

양측의 갈등은 있었지만 이들 선배들이 거둔 성과가 오늘 한국영화의 든든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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