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의 오늘] 한국 첫 극영화 1호 개봉

입력 2011-04-09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23년 ‘월하의 맹서’ 상영
영화의 역사는 110년을 훌쩍 넘는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 파리의 지하 살롱에서 100여편의 활동사진을 상영한 뒤 시작된 영화의 역사 속에서 한국영화사도 1919년 그 막을 열었다. 1919년 ‘의리적 구토’가 “연극 내용의 일부를 야외에서 촬영해 연극의 중간에 상영”(한국영상자료원 자료)됐다. 이른바 ‘키노드라마’였다.

그렇다면 최초의 한국 극영화는 무엇일까. 1923년 오늘, 윤백남 감독이 연출한 ‘월하의 맹서’가 선보였다.

서울 경성호텔에서 시사회를 갖고 관객을 만난 ‘월하의 맹서’는 약혼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노름과 주색에 빠진 지식인 청년이 약혼녀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당시 조선총독부 우체국이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계몽영화여서 최초의 한국영화인지를 두고 한때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영화계에서는 ‘월하의 맹서’를 첫 극영화로 인정하고 있다.

‘월하의 맹서’는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이월화는 이 작품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민중극단 단원이었던 이월화는 ‘월하의 맹서’ 이후 ‘기나가의 비밀’과 ‘뿔 빠진 황소’ 등에 출연했다. 하지만 조선 권번의 기생이 된 뒤 일본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출자 윤백남은 소설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한국 최초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다. 또 일본 자본이 아닌 순수 조선인의 영화 제작사 윤백남 프로덕션을 차리기도 했다.

‘월하의 맹서’가 만들어질 무렵까지 한국영화는 일본의 자본에 크게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 1924년 단성사의 박승필 사장이 돈을 댄 ‘장화홍련전’ 이후 나운규 등이 등장하면서 그 유명한 ‘아리랑’ 등 민족의식을 담은 영화까지 제작됐다.

윤여수 기자 (트위터 @tadada11)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