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자 품에 안고 눈물의 “아리라∼앙!”

입력 2012-09-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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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기덕 필름

■ 한국영화 첫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김기덕 감독 영화같은 인생

중졸 학력 전부…구로공단 노동자 출신
95년 충무로 첫 발…‘악어’로 감독 데뷔
주류 향한 거침없는 독설…이단아 낙인

베니스영화제 ‘아리랑’ 열창 수상 화답
‘젊은 비평가상’ 등 비공식 3관왕 영예도

‘폭력과 파격의 미학’ ‘한국영화계의 이단아’ ‘열등감의 괴물’ ‘가장 논쟁적인 작가’….

9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막을 내린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김기덕 감독. 한국영화 최초로 세계 주요 영화제의 최고상을 받으며 저력을 확인한 그는 20년이 채 되지 않는 연출 경험에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한국영화 100년사의 쾌거”(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를 안았다.

그러기까지 살아온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그런 인생을 반영하듯 작품들은 폭력과 파격, 음울함의 메시지를 담아왔다. 1960년 경북 봉화 태생인 그는 가난한 가정환경에 정식 학력을 인정받지 않는 농업학교를 졸업, 중졸 학력을 지녔다. 구로공단과 청계천에서 노동한 그는 해병대 복무를 마치고 프랑스로 떠나 초상화 그리기로 생계를 유지했다. 미술의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고 터득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32세의 나이에 처음 본 ‘양들의 침묵’과 ‘퐁뇌프의 연인들’은 그를 영화의 길로 이끌었다. 1995년 ‘무단횡단’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된 그는 이듬해 ‘악어’로 감독이 되었다. 이후 ‘파란 대문’ ‘섬’ ‘수취인불명’ ‘나쁜 남자’ 등을 통해 폭력과 파격의 미학을 드러내며 논쟁을 몰고 다녔다. 장동건, 이나영과 각각 ‘해안선’, ‘비몽’을 함께 하며 톱스타들과도 호흡을 맞춘 그는 2002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2004년 ‘빈집’으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을 받으며 ‘작가의 탄생’을 알렸다.

그 이전부터 이미 해외에서 명성을 얻은 그는 그러나 2005년 ‘활’을 1개관에서 개봉하고, 하정우 주연 ‘시간’ 역시 미개봉의 위기에 놓이면서 한국영화계 주류에 독설에 가까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2008년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한 제자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를 흥행시켰지만 이후 장 감독이 떠나가면서 김 감독은 피폐해진 심정을 안고 3년의 은둔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해 ‘아리랑’으로 건재함을 알리며 영화와 자신의 인생을 전하며 세상 속으로 나왔다. 그런 후 만든 ‘피에타’는 그만큼 남다른 의미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

김기덕 감독은 9일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고 ‘아리랑’을 노래했다. 그는 ”지난 4년 간의 나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씻김굿이다“면서 “이 영화에 참여해준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

한편 ‘피에타’는 영화제 폐막에 앞서 젊은 관객이 주는 ‘젊은 비평가상’, 이탈리아 영화 기자들이 뽑은 ‘골든 마우스상’ 그리고 작가 나자레노 타데이를 기리는 ‘나자레노 타데이상’ 등 비공식 3관왕을 차지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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