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영화, 칸 경쟁 진출 실패?’…그게 최선입니까?

입력 2014-05-17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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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67회 칸 국제영화제 포스터

“7분이야?” “5분 아냐?”

10여년 전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공식 상영된 뒤 벌어진 기자들의 ‘갑론을박’입니다.

해당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오르면서 이를 본 관객들이 몇 분 동안 박수를 쳤느냐를 두고 기자들은 ‘논란 아닌 논란’을 거듭했습니다. 심지어 ‘기립을 했느냐’ 여부도 그 대상이었습니다.

그 끝에 ‘7분으로 하자’며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그 다음날 국내에서 발행된 신문에는 ‘영화 ○○○○. 7분간 기립박수’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영화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은 물론 이에 대한 관객들의 (기립)박수는 신선한 기사 아이템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단순무식’해서 ‘용감’했던 때 얘기입니다.

각종 유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작에 대한 박수 세례는 전혀 새로운 것도, 신기한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기립)박수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관객에게 감동을 준 제작진과 출연진의 노고에 감사와 격려의 의미를 보내는 것으로, 대부분의 영화 상영이 끝나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요. 1분 더 길게 쳤다든지, 모든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든지. 딱 그 정도의 차이 말이지요. 하지만 그것 역시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물론 그만큼 진한 감동을 안겨준 영화라는 찬사가 섞여 있기는 합니다만, 이젠 그리 큰 뉴스감이 되지 못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 ‘한국영화, 2년 연속 칸 경쟁부문 진출 실패’?

올해도 어김없이 제67회 칸 국제영화제가 15일(한국시간) 막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또 ‘어김없이’ ‘한국영화, 2년 연속 칸 경쟁부문 진출 실패’ 혹은 ‘무산’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맞습니다. 한국영화는 2012년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 이후 올해까지 2년 연속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프랑스의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열리는 칸 국제영화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칸 국제영화제는 ‘자전거도둑’ 등을 연출하며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비토리오 데시카와 ‘무방비도시’의 로베르토 로셀리니,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꼽히는 ‘시민 케인’의 오손 웰스, 프랑스영화에 새로운 기운을 몰고 온 누벨바그의 선도자 프랑수아 트뤼포,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데이비드 린치 등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장들을 소개했습니다.

조엘·에단 코언 ‘형제’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됐고, 아일랜드의 서사 짙은 이야기를 그려온 켄 로치, ‘펄프 픽션’과 ‘킬 빌’ 등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쿠엔틴 타란티노, 올해 공식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기도 한 ‘피아노’의 제인 캠벨 감독 등도 진작에 칸 국제영화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중국의 새로운 영화 흐름을 이은 첸 카이거와 ‘해피투게더’의 왕자웨이, 이란영화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불러모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일본영화 ‘우나기’의 이마무라 쇼헤이와 ‘아무도 모른다’로 이야기의 충격적 면모를 과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도 칸 국제영화제를 통해 아시아 영화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이렇듯 쟁쟁한 거장과 명장들을 소개하거나 또 그 명성을 재확인시켜주는 무대로서 칸 국제영화제는 전 세계 어떤 영화제도 따라올 수 없는 권위를 쌓았고 관객에게 신뢰를 주었습니다.

여기에 칸 국제영화제는 개최 기간 중 세계 각국의 영화 관계자들, 특히 바이어와 마케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영화를 팔고 사게 하는 대규모의 ‘견본시’ 필름마켓까지 운영합니다.
칸 필름마켓은 아메리칸필름마켓(AFM)과 밀라노필름마켓(MIFED)과 함께 ‘세계 3대 영화 시장’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견본시’란 팔거나 사려는 영화의 완성본과(필름마켓에서는 바이어와 마케터들만이 참여하는 마켓 시사가 별도로 진행됩니다), 말 그대로 그 ‘견본’이 되는 프로모션 필름 혹은 예고편과 포스터 등을 소개함으로써 영화 교역의 첫 발을 내딛게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영화제의 명성과 함께 전 세계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대거 칸에 몰려들곤 합니다.

이 필름마켓을 통해 칸 국제영화제는 영화산업의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며 그 굳건한 위상을 다지고 있습니다.

아시아권 최대의 영화제로 자리 잡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필름마켓, 홍콩의 필름마트 등이 모두 이 같은 이유에서 운영됩니다.

한때 ‘일반상식’류의 책에서는 칸 국제영화제를 독일의 베를린, 이탈리아의 베니스 국제영화제와 한 묶음으로 해 ‘세계 3대 영화제’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이 위상을 드높이면서 이제 ‘세계 3대 영화제’는 그저 ‘좋았던 옛날’의 이름으로만 남은 듯합니다.

어쨌든 여전히 칸 국제영화제는 세계 각국 영화 관계자들에게는 최고의 영화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관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명성을 지닌 칸 국제영화제 그것도 황금종려상이라는 세계적인 영예를 얻을 수 있는 경쟁부문에 한국영화가 초청을 받지 못한 것은 아쉬움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그동안 이두용,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배용균, 전수일, 홍상수, 송일곤, 박찬욱, 이창동 등 많은 한국 감독들이 칸 국제영화제를 통해서 해외에 이름을 알려 온 터입니다.

그 명성에 맞는 전 세계 영화 관계자들이 집결하는 무대에서 이들은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을 자랑하면서 해외의 관심을 얻었습니다.

전도연은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올해에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한국 배우의 힘을 대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한국영화가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건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요.


● 한국영화의 성장, 칸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올해 ‘도희야’라는 영화가 19일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공식 상영되는 것을 시작으로, ‘끝까지 간다’ 등 몇 편의 한국영화가 각종 비공식 부문에서 해외 관객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영화가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해외에서 그 명성을 확인하고 재능을 인정받는 의미를 애써 부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의아한 건 한국영화가 올해 그것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지 못한 것을 두고 “지나친 상업주의의 결과”로만 바라보려는 시선입니다.

그런 시선과 주장에는 “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에서 오로지 수익과 흥행만을 목표로 한 영화들만이 출현하고 예술성은 죽어가고 있다”는 배경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얼핏 ‘예술성(그것조차 기준은 모호하기만 합니다)=작품성’ 그리고 ‘상업성=수준 낮은 영화’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아닐까 우려스럽기만 합니다.

기실 모든 영화는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전제로 만들어집니다. 일반 극장에 그 상영 포스터와 간판을 내거는 영화는 모두 ‘상업영화’라고 한다면 과언일까요.

지금까지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한국영화를 볼까요?

한국영화 최초의 칸 국제영화제 칸 경쟁부문 초청작인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을 비롯해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이창동 감독의 ‘시’ 등도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제작되고 상영된 작품들입니다.

어쩌면 ‘예술영화’로만 포장됐다면 이들 영화들은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수준 높은 연출력과 제작 능력, 배우들의 열연 등에 힘입어 관객과 대중의 인정을 받은 영화들이라는 점을 상기해봅시다.

관객과 대중의 정서에 젖어들고 그들의 감동을 자아낸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는 성과를 얻었지만 또 단지 그것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앞선 시각과 주장은 흥행만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현재의 영화계 세태를 비판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단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한 근거가 그것이라는 데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2009년 배우 송강호는 ‘박쥐’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레드카펫을 밟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제가 올림픽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을 ‘진출’이라 쓰고, 수상이라도 하면 마치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쟁취한 듯, ‘2등상’ ‘3등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는 데 이르러서는 영화제가 어느새 성과만을 자화자찬하는 경쟁의 무대로만 보이기까지 합니다.

한국영화는 어느새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TV의 대중적 보급, 정치사회적인 상황과 검열로 인한 소재의 제한, 제작비의 불안정한 조달 방식 등 여러 가지 장벽 앞에서도 한국영화는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이제는 연간 1억명의 관객이 한국영화를 보는 시대가 됐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갈증을 과감히 토로하며 비판하는 관객의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한국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노력 그리고 그에 답하는 관객들의 신뢰 덕분입니다.

그리고 이제, 칸 국제영화제는 우리 관객에게도 절대 낯선 공간과 무대가 아닙니다.

대신 그 호화로우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영화제를 대단한 경쟁과 성과의 공간과 무대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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