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우형, ‘레미제라블’과 참으로 끈질긴 운명

입력 2016-03-04 18: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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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자베르’를 도전했는데 ‘앙졸라’를 맡았고 올해는 ‘장발장’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자베르’가 됐어요. (웃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냐고 하자 뮤지컬 배우 김우형이 웃으며 답했다. 사실 2007년에도 그는 ‘레미제라블’과의 연이 있었다. 당시에는 앙졸라를 하고 싶어 오디션을 봤고 합격을 했지만 제작사의 사정으로 공연이 무산된 것. 참으로 끈질긴 운명 아닌가. 올해도 하고 싶은 배역의 기회를 놓쳐 아쉬운 마음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레미제라블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이에 한계도 있었겠지만 내면의 깊이가 문제였겠죠. ‘자베르’도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어서 좋아요. 사실 이 작품만큼 여러 역할이 탐나는 작품도 없어요. 그래서 ‘레미제라블’을 좋아하나봐요.”

◆ “레미제라블은 ‘신념’과 ‘신념’의 대립”

김우형에게 ‘자베르’ 캐릭터를 보며 느낀 것은 신념과 신념의 대립. 빈민층으로 살던 장발장과 자베르의 다른 신념으로 부딪히는 갈등이 결국 안타까운 운명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레미제라블에서 보여주는 것은 참 많다. 힘든 시대, 안타까운 정치적 상황,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사랑과 우정 등이다. 그 속에서 자베르는 굳건한 신념을 보여줘야 했다”라고 말했다.

“굳이 선과 악을 나눈다면 자베르가 후자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자베르가 절대 악인이라고 생각 안 해요. 최하층민으로 살았던 그는 다시 빈민가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에 곧은 신념을 지니게 됐어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빗나가는 사람들을 혐오한 거고 장발장도 그 중 하나였던 거죠. 그는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 본인의 신념이었을 거예요.”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물으니 음악적인 부분과 중후한 움직임을 꼽았다. 자베르의 음역대가 중저음이라 맞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잘 할 수 있는 음역대가 아닌지라 음악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라고 말했다.

“나이를 묻혀내야 하는 게 관건이었죠. 연기 뿐 아니라 동작도 마찬가지예요. 자베르는 나이가 든 사람이라 묵직하게 움직이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관객 분들 중 자베르의 느린 동작에 ‘장발장과 장난처럼 싸운다’는 말도 하시더라고요.(웃음)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에너지를 과하게 씁니다. 하하. 머리부터 발끝까지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그래서 신체 훈련도 많이 하고요. 가끔은 노래하다 담이 걸리기도 해요.”

슬쩍 다시 물었다. ‘레미제라블’이 다시 공연을 한다면 장발장에 다시 도전할거냐고. 김우형은 “원래 앙졸라를 했던 배우가 다음엔 자베르를 맡고 그 다음엔 장발장을 한다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곧바로는 안 될 것 같고 5년 정도는 더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기 오디션은 ‘얄짤’ 없어요. 전 시즌에 했다고 유리한 것도 없고 결정은 ‘칼’같아요. 솔직히 그게 바람직한 거죠. 그래서 제가 더 노력을 해야 해요. 장발장은 음역대도 테너와 바리톤의 소리를 다 가져야하고 게다가 소리에 세월이 묻어나야 해요. 게다가 넘버도 섬세해서 음악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이상 할 수 없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배우에겐 매력적인 도전이라 할 수 있죠. 제가 큰 그릇이 됐을 때 감히 도전해보려고요.”


◆ “휘성·소리꾼 이소연이 제게 고맙다고? 당연한 일 했을 뿐”

김우형은 사람 잘 챙기기로 소문난 배우이기도 하다. 가수 휘성이 ‘조로’로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을 당시 김우형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아리랑’으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서 본 소리꾼 이소연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낯설었던 연습실에서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이가 김우형이었기 때문. 휘성은 김우형의 아내 김선영 콘서트에서 “김우형 씨가 구석에 있는 날 보더니 손을 내밀며 ‘난 김우형이라고 해’라고 인사를 하셨다. 그게 그렇게 고맙더라”고 말했다. 이소연 역시 “김우형 선배가 먼저 인사를 해주더라. 덕분에 낯선 기분이 덜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말해줬더니 쑥스러워했다.

“사실 별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먼저 다가가주면 분위기가 편해지니까요. 뮤지컬을 처음 하는 친구들이라면 낯선 기분은 당연한 거고 우리는 몇 개월 동안 같이 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챙겨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무작정 잘해주고 챙겨주는 건 아녜요. 약간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친절하고 잘해준다는 것이 어쩌면 ‘내가 저 사람 보다는 낫다’는 인식과 개념이 내제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개인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은 그래요.”

어느 덧 경력도 10년이 넘었다. 홀연히 흘러간 것 같다고 말한 그는 “젊었을 땐 무서운 게 없었는데 요즘엔 내 자신에게서 두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가지고 있는 재능에 비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동안 깨달은 것은 제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누구처럼, 누구를 쫓아가려는 게 아니라 요즘 작품들의 수준이 올라간 만큼 저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거죠. 다들 비싸게 티켓을 구매하시고 오시는 건데 더 훌륭한 연기를 보여야 하는 게 맞죠. 충분히 그럴 권리를 누리셔야 해요. 거기에 부합하려면 더 공부해서 신무기를 장착하려 합니다.(웃음) 여러 무기를 장착하면 어디 쓸 데는 많겠죠. 꾸준히 노력하고 싶어요.”

곧 아빠도 된다. 축하한다는 말에 감사하다면서도 얼떨떨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고 한다. 철저히 준비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내 대신 출산 용품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샀다고. 그는 “아기물품 브랜드가 참 많더라. 선택이 어렵다”라고 해도 기쁜 마음을 감추진 못했다.

“근데 참 이상해요. 어쩌면 아이가 하나 생기는 건데 에너지가 생겨요. 아빠가 되면 슈퍼맨이 된다는 게 맞는 말인가 봐요. 앞으로 아기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돼야죠. 그러려면 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돼야겠죠.”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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