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서른여섯순정파내동생의순애보

입력 2009-02-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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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2월 우리 4형제 중 막내 남동생이 드디어 결혼을 했습니다. 서른여섯 노총각이라는 그리 명예롭지 않은 딱지를 뗀 겁니다. 사실 그 동안 명절 때나 가족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저희 형제들은 “우리 막내. 언제 결혼시키지?” 하는 게 최고의 화두였습니다. 여자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감정이 꽉 막힌 목석도 아닌데 이상하게 대학 다닐 때부터 지금 직장생활 할 때까지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는 겁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장가가서 애를 낳은 친구들도 있는데, 그걸 보면 나름대로 결혼 생각이 날 법도 한데, ‘신체 건강한 젊은 놈이 도대체 왜 그럴까?’하고 다들 의아해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여름 제 동생에게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끝나면 바로 칼 퇴근해서 집으로 오던 녀석이 어찌된 일인지 점점 귀가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출근 할 때도 장시간 거울을 뚫어져라 보고, 생전 꾸미지 않던 녀석이 갑자기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분명히 녀석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게 틀림없다고 느낀 저는 그 녀석을 따로 불러 슬쩍 물어봤습니다. “기남아, 너 요즘 여자친구 사귀지? 누군지 형한테 얘기해주면 안 돼?” 그러자 펄쩍 뛰며 아니라고 그러는 겁니다. “야 임마! 아니긴 뭐가 아니야. 니 얼굴에 지금 ‘나 사랑하고 있어요’ 하고 써있는데∼ 어떤 아가씨야?” 하니까 “나보다 일곱 살 아래예요” 하면서 줄줄줄 그 아가씨에 대해 얘길 해주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같은 회사 동료인데, 제 동생뿐만 아니라 그 아가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했습니다. 그 회사 대리인데, 오래전부터 적극적으로 마음 표현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가씨가 그 대리라는 사람과 제 동생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중인데, 제 동생 말로는 자기한테 더 마음이 기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시간이 흐르더니 어느 날 제 동생이 그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며 제게 한 가지 재밌는 얘기를 해줬습니다. 하루는 경양식집으로 여자친구를 불러 밥을 먹고 있는데, 그 친구가 한번 제 동생의 마음을 시험하고 싶었던지 “오빠, 우리 이제 그만 만나면 어때요? 그냥 이대로 오빠, 동생으로 남아도 좋지 않아요?” 하면서 이별 비슷한 분위기로 말을 하더라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들은 제 동생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갑자기 배신감에 부르르 떨다가 울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에 당황한 여자친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탁자 위에 있는 냅킨를 주고, 동생의 눈을 정성스레 닦아줬다고 합니다. 제 동생이 거기서 울음을 그치는 게 아니라 테이블 위에 냅킨을 다 써버릴 정도로 바보같이 계속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정파 제 동생의 일편단심에 감동해 그 여자친구는 결혼을 결심하게 됐고, 지금은 저희 집의 새 식구로, 저의 제수씨로 들어오게 됐답니다. 이런 우여곡절 속에 하나로 묶인 두 사람 요즘은 신혼의 단꿈에 푹 빠져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나 모릅니다. 여하튼 서른여섯 살 노총각이었던 제 동생이 새 신랑이 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습니다. 경기 과천 | 신승남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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