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박지혜의 힐링 연주…행복온도를 올리다

입력 2016-05-0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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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의 여제’로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국내 순회공연인 코리아슈퍼투어를 마치고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월드투어의 막을 올린다. 클래식과 록 음악이 어우러진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박지혜. 사진제공|박지혜

‘라이브의 여제’로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국내 순회공연인 코리아슈퍼투어를 마치고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월드투어의 막을 올린다. 클래식과 록 음악이 어우러진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박지혜. 사진제공|박지혜

우울증 극복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콘서트홀·교회·복지시설·병원 등
음악 치유자로 1년 250여 회 무대

그녀가 들어서는 순간 방안의 온도가 2도쯤 쑥 상승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올린 한 대(굉장히 비싸다)로 전 세계인의 마음의 온도를 높이고 다니는 박지혜(31)는 음악의 전도사이자 치유자로 유명하다. 그녀가 연주하는 음표들은 메스가 되고, 약이 되어 사람들의 상처를 깁는다. 마음의 출혈이 멈추고, 새로운 피부가 돋아난다. 박지혜의 활이 부리는 마술이다.

박지혜는 독일 마인츠에서 출생해 대부분의 시절을 독일에서 보냈다. 박지혜에게는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는 세 개의 키워드가 있다. 최연소 독일음대 입학, 명기 과르네리 그리고 우울증.

박지혜가 자신의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악기는 세계 3대 명기 중의 하나인 과르네리이다. 독일정부로부터 2003∼2014년 과르네리를 무상으로 대여해 쓰다가 2014년부터는 1735년산 과르네리를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박지혜의 콘서트에 가면 이 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간적, 음악적 벽에 부딪쳤던 시절 박지혜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하지만 결국 극복해냈다. 박지혜에게 우울증을 안겨준 것은 음악이었지만, 그녀를 치유한 것도 음악이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가스펠송이 주저앉았던 박지혜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제일병원 김태경 행정부원장(오른쪽)으로부터 홍보대사 위촉장을 받는 박지혜. 사진제공|제일병원

제일병원 김태경 행정부원장(오른쪽)으로부터 홍보대사 위촉장을 받는 박지혜. 사진제공|제일병원



● 내 인생의 공연 “미국생활 40년 만에 처음 행복했다”

이후 박지혜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무대를 향해 거침없이 뻗어가던 천재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치유하는 음악의 치유자로 거듭났다. 전 세계의 대규모 콘서트홀에서부터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작은 교회, 복지시설, 병원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바이올린을 어깨 위에 얹었다. 크고 작은 무대를 모두 합하면, 1년에 250여 회에 달한다. 하루에 두 번 무대에 서는 날도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에는 임산부, 환자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해온 공로로 제일의료재단 제일병원의 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

박지혜는 “관객이 한 명이든 만 명이든 내가 무대에서 쏟는 에너지는 같다”면서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가 있었다”라고 했다.

박지혜는 지난 3월 미국 LA에서 연주했다. 미국정신건강국가위원회(NATCON)가 주관하는 컨퍼런스에 참가해 5000명 이상의 정신건강 및 중독치료 전문가들 앞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빠듯한 일정 사이에 틈을 내어 한인복지센터를 찾아갔다. 관객은 이민 1세대에 가까운 노인들이었다. 박지혜는 베토벤, 브람스 대신 ‘고향의 봄’과 자신이 편곡한 ‘지혜 아리랑’ 등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한 노인이 그녀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40년 미국생활 중 처음으로 행복했다”는 그의 눈가에는 물기가 그렁그렁했다. 박지혜는 “그 짧은 문장 속에 어르신들의 마음이 다 들어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힐링을 해드리러 갔다가 내가 받고 돌아왔다”고 했다.

박지혜는 생애 최고의 공연 중 하나를 앞두고 있다. ‘월드투어 2016’으로 명명된 이 공연은 12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연다. 1부는 베토벤, 생상 등 정통 클래식을 연주하고 2부는 분위기를 싹 바꿔 록밴드와 함께 비발디의 사계를 들려줄 예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유명한 비탈리의 샤콘느를 힘차고 화려한 록버전으로 깜짝 연주한다.

박지혜는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에 대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정통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녀가 클래식 연주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은 선한 영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클래식 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에는 한정적이나마 클래식 연주자로 돌아갈 생각이다. 자신의 음악적 고향인 클래식에 대한 갈증을 더 이상 누르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음악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음악은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정말 힘들 때, 위로의 말은 귀에 안 들어와도 음악은 들어오더군요. 음악은 소화를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음악’을 들고, 저는 다시 세계무대로 나갑니다. 이 음악을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만으로도 상대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음악은 오죽할 것인가. 박지혜는 사람의 마음을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다. 월드투어가 다시금 이를 입증해줄 것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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