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 ‘열정맨’ 김정현 “많이 내려놔, 부담 없이 불러줬으면”

입력 2019-11-03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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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아침연속극 ‘수상한 장모’와 SBS 금토극 ‘배가본드’로 일주일 7일 가운데 6일을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배우 김정현. 그와 SBS의 깊고 오랜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정현은 배역 이름도 없던 1990년대초 단역 시절 SBS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출연료 수급용 통장을 개설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김정현은 ‘모래시계’ ‘카이스트’ 등의 전성기, 연기 변신에 성공한 ‘자이언트’ 그리고 이번 두 복귀작 모두 SBS와 함께했다.

40여 편에 달하는 작품 가운데 자타공인 인생작은 역시 SBS 드라마 ‘모래시계’(1995). 김정현은 자신의 배우 인생은 ‘모래시계’를 기점으로 전후로 나뉜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기를 시작했는데 저는 운이 좋았던 케이스예요. 엑스트라 생활을 1년 정도 겪은 끝에 500대1의 경쟁을 뚫고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캐스팅됐죠. 그 작품 덕분에 ‘모래시계’에도 캐스팅됐고요. ‘모래시계’가 첫 방송된 날이 정확히 1995년 1월 9일이었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게 하루아침에 제 인생이 바뀌었거든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작품이고요. 앞으로 제가 어쩌면 ‘모래시계’보다 더 큰 작품을 할 수도 있겠지만 80대가 되어도 똑같이 저에게 ‘인생작’은 ‘모래시계’일 거예요.”

‘모래시계’로 단숨에 얼굴을 알리고 ‘카이스트’로 전성기를 맞은 김정현은 거의 매해 쉬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특히 드라마 ‘작은 아씨들’ ‘대조영’ ‘엄마가 뿔났다’ ‘선덕여왕’ ‘자이언트’ ‘기황후’ 등 주로 안방극장에서 활약해왔다. 대중의 사랑 속에 활발한 행보를 펼쳐왔지만 때로는 연예계를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는 김정현. 크고 작게 겪었던 슬럼프를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기도 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잘 버티고 이겨내 온 것 같아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이 굉장히 불안정한 직업이잖아요. ‘딴따라해서 뭐 먹고 살래’라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나 싶을 때도 있었어요. 혼자일 때는 슬럼프가 와도 어떻게든 버텼는데 처자식이 생기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낄 때가 많았죠. 어깨에 짐이 올려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사업을 병행하기도 했어요. 원래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요식업을 했었죠. 식재료도 떼러 다니고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했었어요. 요리 실력이요? 집밥 스타일에 강한데 장모님도 제 요리를 찾으실 정도죠. 하하.”


작품과 사업을 병행해왔던 김정현은 2015년 SBS 드라마 ‘어머님은 내 며느리’를 마지막으로 4년의 연기 공백을 겪었다. 데뷔 이후 가장 오랜 공백이었다. 김정현은 지난 4년을 돌아보며 40대 남자 배우로서의 딜레마를 고백했다.

“제가 올해 마흔 넷이에요. 아빠 역할을 맡기에는 애매하게 젊은 나이죠. 남자 배우들에게 40대가 힘든 시기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의 선배들을 봐도 40대 당시의 행보가 불안 불안했던 것을 저도 알기 때문에 어떻게 50대까지 잘 버텨서 살아남느냐가 관건이죠. 배우로서 살아가려면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김정현은 ‘냉철하게’를 넘어 ‘냉정하게’ 스스로를 바라봤다. 익숙한 얼굴보다는 새롭고 신선한 마스크를 찾는 추세에 기성 배우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의 위치와 장단점 그리고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10년~20년 넘게 활동한 배우들은 ‘얼굴 팔이’가 많이 됐기 때문에 기대치가 크지 않잖아요. 주인공으로 탄탄대로를 달려온 배우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주인공도 하긴 했는데 스타는 아닌 어중간한 배우들이 훨씬 더 많죠. 저도 그 안에 포함될 거예요. 그런 기성 배우들은 현 시기에 설 자리가 없어요. 요즘 조연으로 나오는 기성 배우들을 생각해보세요. 다 새로운 얼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40대 배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불러주지 않는다’ 고들 하거든요. 답은 버티는 것뿐이에요.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잘 준비하고 이겨내면 50대 이후에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고 봐요.”


김정현은 연기 공부를 위해 후배들의 작품을 챙겨보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미 베테랑 배우지만 그에게 연기 선배로서의 고집은 없었다. 요즘 작품들을 통해 달라진 연출 패턴과 다양해진 연기 스타일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연출자들이 짜놓은 틀 안에 배우를 넣는 시스템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풀어놓고 배우들을 뛰놀게 하더라고요. 연출자들의 생각이 바뀌니 배우들의 스타일도 달라졌어요. 연출자들이 열어놓는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도 한층 유연해졌죠. 많이 자유스러워졌어요.”

시대에 발맞춰 준비해온 덕분에 복귀작 ‘수상한 장모’와 ‘배가본드’ 현장에도 빠르게 적응했다는 김정현. ‘수상한 장모’에서는 퀵 배달 직원에서 제이 그룹 오 회장의 수행 비서로 발탁되는 이동주를, ‘배가본드’에서는 국제변호사 홍승범을 연기하고 있다. 4년만의 복귀작이기에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작품들이다. 모두 앞서 여러 차례 작품을 함께한 제작진이 김정현을 믿고 다시 기용하면서 출연이 성사됐다.

김정현은 특히 ‘배가본드’에 대해 “장영철·정경순 작가가 기획하던 단계에서부터 함께해 왔기 때문에 애틋하다”고 고백했다. 이어 “홍승범은 크진 않아도 중요한 역할이다. 후반부 큰 반전이 있을 것”이라며 “‘배가본드’ 시즌2가 나오면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배가본드’ 시즌2에 확신을 가지고 열정과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금은 두 작품을 하고 있지만 끝나고 나면 또 몇 개월을 쉴지 저도 모르죠. 쉬어도 짧게 쉬고 싶어요. 옛날보다 많이 내려놨어요. 큰 역할, 작은 역할 가리지 않고 배우로서 설 곳이 있다면 서고 싶어요.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서야 계속 빛나니까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관계자 분들이 있다면 색안경 벗으시고 그저 ‘배우 김정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쉬운 대로 써볼까?’라고 생각해주셔도 좋아요. 한두 회 나오는 작은 역할도 상관없어요.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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