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산이란 두 글자는 너무 짧죠” 세 번째 사랑 그 그리움 [리뷰]

입력 2024-01-28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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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산의 세 번째 사랑, 그리움. 10곡의 익숙한 가요를 웅산의 어법으로 다시 빚었다.
이 앨범에서 들을 수 있는 웅산의 노래들은 문장으로 치면 단문에 가깝다. 짧게 끊어치는 단문의 기법을 가져왔지만, 단문의 빠름은 철저히 지워놓았다. 대신 문장과 문장 사이를 마침표 대신 ‘소리의 쉼표’로 이어놓고 있는데, 그 쉼표는 다름 아닌 호흡이다. 웅산은 숨소리마저 노래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앨범 속의 사랑과 그리움은 잘게 쪼개져 있다. 이어령은 ‘마지막 수업’에서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닌 한 커트의 프레임이라고 했다.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였다.
앨범 속 웅산의 노래들은 영상이 아닌 한 장 한 장의 사진처럼 조각나 있지만, 결국 이어지고 접합되어 거대한 사랑, 슬픔, 이별, 그리움과 재생의 파노라마가 되었다.

최근 웅산의 앨범은 미니멀화 되어 가는 특징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노래라면, 그는 이제 소리치지 않고 독백하듯 대화하는 쪽을 선호하는 듯하다. 악기의 구성도 소박해져간다. 갓 지은 잡곡밥에 몇 가지 투박해 보이는 반찬, 국 한 그릇 놓인 밥상인데 미칠 것처럼 맛있다.

노래와 악기는 서로에게 밤의 눈처럼 소리도 없이 스며든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위에 놓여 있지 않다. 필요할 때마다 눈치 있게 뒤로 슬쩍 물러나줄 뿐이다.

앨범에는 두 번의 ‘겨울비’가 등장한다. 첫 곡은 김범룡의 ‘겨울비는 내리고’이고, 김종서의 ‘겨울비’가 6번째 트랙이다. 두 곡의 악기 구성, 노래의 호흡을 비슷하게 가져간 것은 의도적일 것이다. 두 곡에서는 공통적으로 웅산의 겨울비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기포와 함께 선명하게 떠오른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재즈 대중화를 위한 프로젝트’ 14번째 싱글로 앞서 선보였던 곡. 중간부터 삽입되는 트럼펫의 나지막한 울림이 노래만큼이나 좋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밤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곡과 곧바로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시인과 촌장)’는 독특한 편곡이다. 초반 도입부에서 웅산과 기타가 각자의 길을 휘청휘청 가고 있다. 이 무심함이 일으킨 ‘사소한’ 불안감은 피아노가 가세하면서 비로소 덜어내어진다. 겨울바람이 들어오는 방의 창문을 닫듯, 안도감이 온기를 타고 일거에 밀려온다. 앨범 제작사인 유니버설뮤직은 이 곡에 대해 북유럽풍의 재즈곡으로 재탄생 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워할 수 없는 너(김준)’는 라이브의 느낌이 물씬한 곡. 재즈다운 베이스 워킹에 브러시를 이용한 드러밍. 전형적인 재즈의 문법을 적용하고 있다.

앨범의 끝에 가면 ‘안녕이란 두 글자는 너무 짧죠(이장희)’를 만나게 된다. 해먼드 오르간이 사운드의 중심에 서고 블루스를 연주하는 기타가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도 난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웅산이 특유의 유려한 ‘문체’를 구사한 곡으로 앨범 초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좀 더 듣고 싶다. 좀 더 듣고 싶다.
적어도 웅산은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 이 노래를 가져다 놓지 말았어야 했다. 한 곡 한 곡 빼먹다 보니 사랑하기도 전에 그리움이 몰려드는 식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이렇게 끝내기엔, 우리에게 웅산이란 두 글자는 너무 짧은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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