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관통하고 있는, 박혜상이라는 이름의 빛 [앨범리뷰]

입력 2024-02-12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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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이 스며든 드레스, 부력을 이기지 못해 떠오르는 머리카락, 기도하듯 간절히 모은 두 손, 잠이 든 듯 기도하듯 감은 눈과 다문 입, 가만히 떠오르는 물방울들.

재킷의 사진이 조용하지만, 많은 말을 건네온다. ‘BREATH(숨)’는 소프라노 박혜상의 새 앨범이자 두 번째 앨범이다. “물 속에서의 숨은 편안했고, 본연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깊은 평화를 전하고 싶었다”고 박혜상은 말했다.

나머지는 그의 노래가 말하고 있다. 모두 25곡을 담았다. 낯선 것들과 날 것들이 부지런히 교차한다.
콘셉트 앨범으로 설계된 ‘숨’은 ‘결코 슬퍼하지 말라.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라는 핵심 주제를 갖고 있다. 죽음과 삶, 실존적 고민에 대한 박혜상의 답이 25곡의 노래에 담겨 있다.

그의 노래는 때로 죽음을, 때로 삶을, 때로는 죽음과 삶을 동시에 품고 있다. 노래되는 삶은 밝고 희망에 차 있지만, 죽음이라고 마냥 어둡고 탁하지만은 않다. 종종 노래 안에서 삶과 죽음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분명한 것은 삶과 죽음을 관통하고 있는 유일한 빛이 있으니 그것은 ‘평화’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카를로 펠리체 극장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박혜상의 뒤로 저만치 물러서 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박혜상의 노래를 받치는 든든한 부력이다. 기포처럼 끓어오를 때면 박혜상의 빛을 반사해 영롱하게 빛난다. 이 장면은 상당히 아름다운데, 귀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혜상의 소리는 때때로 깊이 깊이 내려가 해저의 울림처럼 들린다. 그 깊은 곳에서 그는 능숙한 솜씨로 평온함을 움켜쥐고는 두 발을 놀려 상승한다. 마음에 덕지덕지 낀 온갖 감정들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표백되어 버리는데, 이건 박혜상의 매직이라고밖에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작곡가 루크 하워드의 노래 ‘시편’에 세이킬로스의 노래를 넣어 편곡한 ‘While You Live’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멋진 첫 곡. 25곡 중에는 한국 작곡가의 작품도 한 곡 담겨 있다. 우효원의 ‘레퀴엠 에트르남(어이 가리)’으로, 아쟁의 독주가 문을 여는 이 곡은 죽은 영혼들에 대한 기억을 약속하는 노래다. 인간의 소리가 아쟁의 소리처럼, 아쟁의 소리가 인간의 소리처럼 들리는 기막힌 조화가 듣는 이의 ‘숨’을 느리게 만든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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