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의춘하추동]‘할아버지야구기자’어디없나요?

입력 2009-04-23 01: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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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내 기자회견장의 맨 앞줄에는 팔순의 마귀같은 할머니가 늘 자리잡고 앉아있다. 그녀의 이름은 ‘헬렌 토마스’로 50년 이상 그 자리를 지켜온 UPI통신 백악관 출입기자다. 오랜 세월 백악관을 지켜보다보니 백악관 내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다. 그러니 신임 대통령이 오면 제일 먼저 그녀에게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손자 같은 기자들과 함께 취재하면서 때로는 대통령 가족들의 백악관생활에 오리엔테이션 역할도 한다는 얘기다. 아무튼 기자로서 특종유무를 떠나 기자회견장에 무게감과 존재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ABC 방송의 ‘바바라 월터스’도 팔순의 할머니로 국교가 단절된 쿠바의 카스트로 의장을 인터뷰장에 끌어내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지금도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목소리 ‘해리 칼라스’가 며칠 전 내셔널스파크 중계석에서 무의식 상태로 발견되어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고 한다. 43년간 필라델피아 전 경기 현장중계를 하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오다 2002년 메이저리그 명예전당에도 헌액된 73세의 야구방송인이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명예전당에 헌액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잭 벅’이란 방송인을 비롯해 시카고 컵스 등 많은 팀이 이런 베테랑 방송인들의 열정으로 장맛 나는 야구를 팬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전통이다.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에도 20년 이상 담당기자로 일하고 있는 기자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을 만나 얘기를 걸어보면 감독 코치보다 팀을 더 꿰뚫어 보고 있어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나라가 어려워 온천지가 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명예퇴직이 홍수를 이루는 마당에 무슨 달나라 얘기 같은 소리냐고 할진 몰라도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어려울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지혜와 경험이다. 첨단기술 분야가 아닌 이상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 다양성이 뒤섞인 비빔밥형 사회를 유지하고 경험을 천시하지 않는 것이 진짜 달나라를 갔다 온 국가의 현 모습이다.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 장맛이 사라지고 전통이 무너지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자주 듣다보니 비빔밥의 원조가 우리나라가 아닌가 해서 해본 얘기다. -이광환 -야구인. 프로야구의 기본철학은 마라톤과 같다. 하루에도 죽었다 살았다를 수없이 외치며 산넘고 물건너 구비구비 돌아가는 인생의 축소판에서 팬들과 함께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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