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한국프로야구, 수많은 별들이 뜨고 지다

입력 2016-01-2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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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우리에게 추억을 안겨준 초창기 스타들도 하늘로 많이 떠나고 있다. 1982년 3월 27일 원년 개막전 선발 맞대결을 펼친 삼성 황규봉과 MBC 이길환이 모두 눈을 감아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최고의 투수와 타자였던 최동원과 장효조는 2011년 9월 일주일 사이로 연이어 비보를 전해와 팬들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삼성 라이온즈

황규봉마저…원년 개막전 선발 모두 하늘로
최동원·장효조 1주일 사이 두고 연이어 비보
2001년 롯데 김명성 감독 시즌 중 별세 충격


1982년 3월 27일. 이 땅에 프로야구가 첫 울음을 터트리며 태어난 날이다.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MBC 청룡의 원년 개막전. 김광철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에 맞춰 홈팀 MBC 선발투수로 나선 잠수함 이길환이 삼성 1번타자 천보성을 상대로 힘차게 초구를 던져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했다. 이어진 1회말. 삼성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우완 강속구 투수 황규봉은 MBC 1번타자 김인식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이길환과 황규봉은 첫 선발 맞대결을 펼치며 프로야구의 태동을 세상에 알렸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지금, 프로야구는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출발을 알렸던 원년 개막전의 양 팀 선발투수들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이길환은 췌장암으로 2007년 6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황규봉도 2개월 전 병원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병마와 사투를 벌이다 18일 쓸쓸히 눈을 감고 말았다. 프로야구를 통해 우리에게 꿈과 희망, 추억과 감동을 선사해준 초창기 스타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이제는 이들로 올스타를 꾸릴 수 있을 만큼 많은 슈퍼스타들이 하늘의 별이 됐다.


최동원 장효조 장명부…불멸의 전설을 남기고

2011년 9월 일주일 사이에 야구팬들에게 연이어 비보가 날아들었다. 9월 7일 ‘안타제조기’ 장효조가 위암과 간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데 이어 꼭 일주일 만인 14일 ‘철완’ 최동원이 대장암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삼성과 롯데 유니폼을 입은 장효조는 역대 타자 중 통산 타율 0.331로 1위(3000타수 이상)에 올라있을 만큼 현역 시절 ‘영원한 3할타자’로 추앙 받았다.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라는 말이 야구계에 전해져 내려왔을 정도로 빼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정교한 타격을 자랑했다. 롯데와 삼성에서 활약한 최동원은 설명이 필요 없는 불멸의 투수.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신화는 다시는 보기 어려운 전설로 남을 듯하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한다’는 속설처럼,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너무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났다. 1956년생인 장효조는 55세, 1958년생인 최동원은 53세의 젊은 나이에 영원히 눈을 감고 말았다.

재일교포 장명부는 현대야구에선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불멸의 기록을 남기고 떠났다. 1983년 삼미에 입단해 무려 30승(16패·6세이브)을 올렸다. 팀당 100경기를 치르던 시즌에 홀로 60경기(선발 44경기)나 등판해 36완투를 기록했고, 427.1이닝을 던졌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2005년 자신이 운영하던 마작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병으로, 사고로…일찍 떠난 스타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감동을 안겨준 멤버들도 대거 세상을 떠나 우리에게 허무함을 안겨주고 있다. 장효조와 최동원을 포함해 포수 심재원과 김진우, 외야수 김정수와 조성옥 등 무려 6명이나 된다.

역대 최고 수비형 포수로 평가받는 심재원(롯데∼MBC)은 1994년 폐암으로 별세했고, 공격형 포수 김진우(삼미∼청보∼MBC)도 당뇨 등 합병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2008년 숨을 거뒀다. 조성옥(롯데)은 동의대 감독 시절인 2009년 간암으로 눈을 감았다. 김정수는 MBC 시절이던 1986년 시즌 후 병역특례 보충역 훈련을 마치고 승용차로 귀가하다 버스와 충돌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당시 합승했다가 목숨을 건진 MBC 김경표는 1989년 다시 교통사고를 당해 숨지는 기구한 운명을 맞았다.

이처럼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선수들도 많다. 1980년대 촉망 받던 투수인 해태 김대현은 1988년, 프로야구 원년 MBC 포수였던 김용운은 2005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광속구 투수’ 박동희(롯데∼삼성)는 은퇴 후 2007년 3월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해태 김상진은 1999년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위암으로 하늘로 갔고, 롯데 임수혁은 2000년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은 뒤 10년간 투병한 끝에 2010년 2월 잠들었다. 한화 진정필은 은퇴 후 아마추어 지도자생활을 하다 백혈병으로 2003년 별세했다. 이밖에 몇몇은 자살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통해 생을 마감해 우리에게 충격을 전해주기도 했다.


● 운명 달리한 감독들

선수뿐이 아니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감독을 맡았던 인물들도 세상을 많이 떠났다. 감독 대행까지 포함하면 총 5명이나 된다. 6개 구단으로 출범한 원년에 지휘봉을 잡았던 인물 중 3명이나 타계했다. 삼성 초대 사령탑이었던 서영무 감독은 1985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1987년 별세했다. 해태 초대 사령탑을 맡았던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은 1997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아시아의 철인’으로 삼미 초대 사령탑에 올랐던 박현식 감독은 숙환으로 2005년 영면했다.

롯데 김명성 감독은 2001년 7월, 경기가 없던 날 남해로 바다낚시를 떠났다가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갑자기 숨을 거뒀다. 현역 사령탑 중에 유일하게 세상을 떠난 감독으로 기록돼 있다. 1988년 태평양 감독대행을 맡았던 특급투수 출신 임신근은 쌍방울 수석코치 시절이던 1991년 구단 버스에서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다 눈을 감았다.

이제 한국프로야구도 역사가 깊어지다 보니 우리 곁을 떠나가는 스타들이 많아지고 있다. 비록 그들은 갔지만, 그들이 남겨준 전설은 우리들 가슴에 추억의 별이 돼 영원히 반짝일 것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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