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허슬·투혼, 우리가 알던 가을이 돌아왔다 [최익래의 피에스타]

입력 2021-11-03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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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안재석·키움 박정음·키움 조상우(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가을은 설렘이 가득한 계절이다. 어느 때보다 중압감이 큰 포스트시즌(PS) 무대, 경험 많은 베테랑들의 존재감은 필수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큰 경기 경험을 갖춘 이는 없다. 제아무리 대단한 선수에게도 첫 가을은 있었다.

2021년에는 안재석(19·두산 베어스)이 그렇다. 정규시즌 96경기에서 타율 0.255, 2홈런, 14타점, 28득점.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지만 유망주를 최대한 2군에서 담금질한 뒤 기용하는 두산이 그동안 보여준 성향의 ‘아웃라이어’였다. 김태형 감독도 “신인 같지 않다”며 이례적으로 칭찬했다. 김 감독은 시즌 내내 안재석에게 “실책 10개를 하든 100개를 하든 상관없으니 자신 있게 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1일 키움 히어로즈와 와일드카드(WC) 결정 1차전, 안재석은 4-7로 뒤진 9회말 무사 1루서 중전안타로 PS 데뷔 타석을 깔끔히 장식했다. 그의 롤 모델 김재호는 PS만 84경기나 소화한 베테랑이다. 안재석은 십수 년 뒤 그 뒤를 이을 자신을 그리고 있을 터다.

#가을은 허슬이 절실한 계절이다. 정규시즌이라면 긴 호흡을 위해서라도 부상 위험이 높은 플레이를 지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웃카운트 하나하나가 소중한 PS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절실함으로 무장한 선수들은 눈에 보이는 기록 이상의 성과를 내며 ‘언성 히어로’로 자리매김한다.

2021년에는 박정음(32·키움)이 그렇다. 올해 정규시즌 70경기에서 타율 0.000(19타수 무안타). 대수비와 대주자가 익숙한 선수다. 하지만 통산 PS 출장은 12경기. 정규시즌 타석에서 지분과 비교하면 가을 활약은 쏠쏠하다. 1일 WC 1차전도 마찬가지. 박정음은 키움이 1-0으로 앞선 7회초, 윌 크레익이 좌전안타로 출루하자 대주자로 투입됐다.

상대 폭투 때 2루를 밟은 그는 전병우의 희생번트 때 3루로 향했고, 이지영 내야땅볼 때 홈을 파고들었다. 7회말에는 좌익수로 나서 양석환의 타구를 펜스에 부딪치며 포구해냈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도 감탄을 금치 못한 호수비. 8회초 타석에서 다시 교체되며 역할은 끝났다. 승패를 떠나 제 역할은 십분 해냈다.

#가을은 투혼이 빛나는 계절이다. 특히 패배가 곧 시리즈 탈락인 입장의 팀들에는 더더욱 그렇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선수들의 의지에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그 투지에 상대는 물론 같은 팀까지 숨을 죽이며 지켜보게 된다.

2021년에는 조상우(27·키움)가 그렇다. 조상우는 1일 8회말 2사 2루서 마운드에 올라 김재환에게 투런포를 내줬다. 블론세이브. 하지만 9회초 7-4 리드를 잡자 9회말 다시 등판했다. 1사 1·2루 위기에 몰렸으나 끝끝내 경기를 지켜냈다. 정규시즌에도 없던 43구 투혼. 키움이 2일 2차전서 완패하며 조상우의 가을은 그대로 끝났다. 올 시즌 후 예정된 입대. 가을 사나이도 잠시 안녕이다. 벼랑 끝에서 던진 투혼. 그래서인지 올해 조상우의 43구는 슬프도록 찬란히 빛났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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