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침대’도 ‘종가’에는 먹히지 않았다 [카타르 리포트]

입력 2022-11-22 1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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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핵개발과 무장테러단체 지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지원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은 얼마 전만 해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에서 ‘왕따’에 가까웠다. 최근에는 국내 상황도 상당히 심각해졌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던 마흐사 아미니가 풀려난 뒤 의문사하자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4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2만여 명이 체포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은 2022카타르월드컵에 출전했다. 일각에선 여성인권 탄압에 열을 올린 이란을 월드컵을 비롯한 국제축구계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란축구대표팀의 스타들은 정부가 아닌 국민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연일 내며 잔잔한 감동을 안기고 있다.


2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이란의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객관적 전력에선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이란의 ‘늪축구’가 과거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등 전통의 강호들을 꾸준히 괴롭혔다는 점에서 결과가 관심을 모았다. 월드컵 시즌만 되면 이란 지휘봉을 잡는 ‘능구렁이’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포르투갈)의 수비전략도 주목할 만했다.


그러나 1966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 이후 56년만의 월드컵 정상을 목표로 하는 잉글랜드는 역시나 강했다. 멀티골을 터트린 부카요 사카(아스널), 잉글랜드의 역대 월드컵 최연소 득점 2위 기록을 세운 19세 공격수 주드 벨링엄(도르트문트)의 활약을 앞세워 이란을 6-2로 완파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전반 초반의 변수가 결정타였다. 이란은 언제나 그랬듯 수비에 치중했다. 필드플레이어 10명이 자기 진영에 내려앉아 잉글랜드의 공격을 막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러나 킥오프 10여분 만에 수비수 마지드 호세이니(카이세리스포르)와 부딪혀 안면을 크게 다친 주전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페르세폴리스)를 잃었다. 베이란반드는 어려운 상대를 만날 때마다 볼을 잡은 뒤 쓰러져서는 한참 동안 시간을 끄는 ‘침대축구’로 꾸준히 지탄받았던 인물이다.


‘정신적 지주(?)’를 잃어서일까. 이란은 와르르 허물어졌다.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대회에서 허용한 전체 실점(6골)과 같은 골을 불과 1경기에서 내줬다. 이란의 A매치 6실점은 1950년 5월 튀르키예전(1-6 패) 이후 72년만이다. 이란의 침대를 차단하려면 빠른 선제골이 핵심인데, 잉글랜드는 빠르고 과감한 공격으로 결과를 얻었다.

심판마저 이란을 외면했다. 베이란반드의 부상 치료를 이유로 전반전 추가시간으로만 14분을 줬다. 후반전 추가시간 역시 10분이었다. 이란으로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경기 후 케이로스 감독은 “팀이 정상적이지 않다. 솔직히 (여러 상황으로) 경기 준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아직은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담담하게 말했으나 예상 밖의 참패에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알라이얀(카타르)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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