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퀸, 위대한 탄생의 비밀

입력 2013-12-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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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프로골퍼는 2013년 해외투어에서 22승을 합작하며 전성시대를 이어갔다. ‘원조 골프여왕’ 박세리를 시작으로 15년째 세계무대를 휩쓸고 있는 여자골프 스타들이 지난 9월 KLPGA 투어 KDB대우증권클래식 출전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최나연, 박인비, 유소연, 장하나, 김자영, 박세리. 사진제공|KDB 대우증권

■ 전설 박세리에서 새 골프여제 박인비까지 15년간 이어온 돌풍의 원동력

1. 보이지 않는 경쟁 스타탄생 한몫
2. 조기전문교육 신체·멘탈 일찍 완성
3. 팬·스폰서 꾸준한 후원 큰힘

미국 11승, 일본 11승. 2013년 우리의 여자골퍼들이 해외에서 거둬들인 우승 트로피 개수다. 1998년 박세리(36·KDB금융그룹)의 ‘맨발의 투혼’으로 시작된 한국여자골프의 전성시대는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올해 미국에서 23명, 일본에서 20명(풀시드권자 기준)의 우리 선수가 맹활약을 펼치며 태극돌풍을 이어갔다.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 계속된 스타탄생과 경쟁

우리 여자골프의 역사는 박세리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 김미현(36·은퇴)과 한희원(35·KB금융그룹), 박지은(34·은퇴), 장정(33) 등이 미국 LPGA 투어에 입성하면서 한국여자골프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른바 1세대로 불리는 박세리, 김미현, 한희원, 박지은, 장정 등의 활약은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이들 1세대가 들어올린 우승 트로피만 50 개가 넘는다. 박세리는 LPGA 통산 25승을 기록하며 한국인 최초로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김미현 8승, 박지은과 한희원은 6승을 기록했다.

성공의 가장 큰 원인은 피나는 노력. 이와 함께 스타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한국여자골프의 전성기를 이끈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은 필드를 떠나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미현은 박세리와의 경쟁관계가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그는 지난해 말 은퇴 후 가진 인터뷰에서 “(박세리와) 라이벌은 아니지만 선의의 경쟁자였다”라면서 “처음엔 일본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가 (박)세리가 미국에 가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미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으로 진출하게 된 건 세리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한국여자골프는 짧은 정체기를 맞았다. 2006년 11승을 합작하고 2007년 4승에 그쳤다. 잠시 한국여자골프의 전성시대가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기우였다. 이내 새로운 스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2008년 등장한 신지애(25·미래에셋)를 필두로 최나연(26·SK텔레콤), 박인비(25·KB금융그룹)로 이어지는 새로운 황금세대가 탄생했다. 이른바 ‘세리키즈’다.

2세대의 활약은 1세대를 뛰어 넘었다. 여기서도 ‘경쟁의 힘’이 작용했다.박인비는 지난 6월 미국 뉴욕주 피츠퍼드의 로커스트힐 골프장에서 열린 시즌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 공식 기자회견에서 “3∼4년 동안 부진할 때 최나연, 신지애의 꾸준함이 부러웠다. 그 기간에 이 선수들은 나의 롤 모델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대구대 골프산업학과 최봉암 교수는 “우리의 내면에는 ‘지고는 못 산다’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운동선수라면 반드시 상대를 꺾어야 한다는 승부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스타들끼리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조기 전문교육으로 탄탄한 실력

박인비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1998년 박세리가 미 LPGA 투어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으로 우승을 차지했던 때다. 흔히 말하는 ‘세리키즈’가 탄생한 시기다. 3년 뒤엔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골프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008년 프로가 되기까지 줄곧 미국에서 골프교육을 받았다. 최나연의 골프입문 시기도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골프연습장에 갔다.

신지애와 이보미, 김하늘도 비슷한 시기에 골프채를 들었다. 모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골프를 배웠다.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과 김효주(18·롯데)는 이보다 빨리 골프를 배웠다. 유소연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취미로 골프를 배운 게 선수의 길로 연결됐고, 김효주는 식당을 하는 부모가 6세 된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어 동네 골프연습장에 맡기면서 입문한 케이스다.

입문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골프채를 잡은 뒤로는 하루 10시간 가깝게 훈련하면서 프로의 꿈을 키웠다.

신지애는 드라이브샷 연습을 하루에 1000회 이상 반복했고 퍼팅 연습은 쉬지도 않고 7시간동안 계속한 적도 있다. 최나연 역시 아침에 경기도 용인의 플라자골프장 연습장에 가면 해가 질 때까지 공만 쳤다. 매일 같이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연습장에서 보낸 것. 말 그대로 골프에 ‘올인’했다.

말콤 글래드웰이 쓴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선 ‘1만 시간의 법칙’이 소개됐다.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1만 시간을 투자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여자골퍼들은 프로골퍼가 되기까지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한다.

오랫동안 최나연의 스윙코치를 맡고 있는 로빈 사임스(북아일랜드) 씨는 “어려서부터 시작된 올인형 교육이야 말로 한국여자골프를 강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라고 첫 손에 꼽았다. 그는 또 “올인형 교육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골프문화다”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전문화된 교육시스템이다. 과거 1세대는 공만 쳐서 실력을 쌓았다. 그러나 2세대는 다르다. 골프 장비의 발달과 신체 조건에 맞는 과학적인 피팅, 멘탈 트레이닝을 통한 정신력 강화 그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진 탄탄한 체력까지 뒷받침됐다. 한 마디로 프로골퍼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 팬과 기업의 관심과 후원

팬들의 응원과 기업의 관심도 한국여자골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신지애, 최나연, 김하늘, 이보미, 김자영의 등장은 국내 골프문화를 바꿔 놨다. 인터넷에는 팬클럽이 결성되고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열혈 팬들은 선수의 든든한 후원군을 자처했다. 신지애의 팬클럽 ‘파이널 퀸’의 회원수는 2200여 명. 이들은 신지애의 우승에 큰 힘을 모아준다. 성적이 안 좋을 때면 위로하고 선전이 펼쳐지면 더 크게 응원한다.

우리 골프스타의 인기는 어느새 해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나연의 팬은 미국,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다. 경기가 열리는 골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다국적 팬클럽은 최나연의 가장 큰 힘이다.

선수도 팬에게 얻는 게 많다. 최나연은 힘든 일이 있을 때 팬들과 더 많이 교류하며 마음을 터놓고 얘기한다. 그는 팬의 응원을 향해 “여러분이 멈추지 않으면 나도 멈추지 않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업들의 골프에 쏟는 애정도 여자골프를 키운 원동력이다. KLPGA 투어는 한해 20개가 넘는 대회를 개최한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3대 투어로 발돋움하는 힘이 됐다. 기업들은 또 스타들에게 거액을 투자하며 후원자가 됐다. 프로골퍼와 스폰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프로골퍼에게 스폰서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특히 해외에서 투어 활동을 벌여야 하는 선수들은 스폰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해마다 투어 경비로만 1∼2억원을 써야 하기에 스폰서의 후원이 필요하다. 기업의 힘을 등에 업은 선수는 골프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얻게 된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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