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W] 웃거나 울거나 놀라거나…트레이드가 뭐길래

입력 2017-04-2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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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36년 역사상 블록버스터 트레이드 1호는 1988년 롯데와 삼성이 두 차례 단행한 4대3 그리고 2대2 트레이드였다. 당시 유니폼을 바꿔입은 선수들의 면면은 지금 다시 봐도 화려하다. 최동원과 김시진, 장효조, 김용철(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등 초창기 프로야구 대스타들이 트레이드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스포츠동아DB·롯데 자이언츠·삼성 라이온즈

정치권이 때 아닌 ‘장미 대선’으로 열기가 달아오르는 시점에, KBO리그는 때 아닌 ‘벚꽃 트레이드’ 열풍으로 그라운드 안팎이 뜨거워지고 있다. 예년 같으면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전력을 세팅하고, 4월이면 ‘탐색전’을 펼치던 시기. 우리 편에 조금 부족한 면이 보이고, 상대 편에 조금 허술한 면이 느껴져도 4월엔 “조금 더 두고 보자”는 관망세가 우세했다.

그런데 올해는 시즌 개막 첫 달인 4월에만 벌써 3건의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7일 SK와 KIA가 단행한 4대4 트레이드가 뇌관으로 작용했다. SK가 이명기(외야수) 김민식(포수) 최정민 노관현(이상 내야수)을 보내고, KIA가 노수광 윤정우(이상 외야수), 이홍구 이성우(이상 포수)를 건네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1건의 거래에 8명이 오간 것은 1982년 KBO리그 출범 후 역대 4월 트레이드 중 최대 규모였다.

양 팀이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놀라운 상승세를 타면서 ‘윈-윈 트레이드’의 좋은 예를 제시하자 다른 팀들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매물을 들고 장터로 나서고 있다. 17일 두산과 한화가 포수 최재훈과 내야수 신성현을 주고받는 거래를 성사시켰고, 하루 뒤인 18일 경기 직후엔 kt가 장시환과 김건국(투수), 롯데가 오승택(내야수)과 배제성(투수)을 내놓는 2대2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이에 앞서 시범경기 기간인 3월17일 NC가 강윤구(투수)를 얻고, 넥센이 김한별(투수)을 받는 1대1 트레이드까지 합치면 벌써 4건에 8개 구단이 관여돼 16명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KIA 김민식-이명기-한화 최재훈-롯데 장시환-kt 오태곤-두산 신성현-SK 노수광-이홍구(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한화 이글스·롯데 자이언츠



● 역대 트레이드 총 299건, 641명이 오갔다

“어이, 서 선수!”

삼성 유격수 서정환(전 KIA 감독)은 1982년 12월 어느 날 밤, 밤길을 걸어 집으로 가고 있었다. 시즌이 끝나고 가족이 있는 서울집에 올라가 있던 그는 어스름한 밤에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놀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해태 이상국 홍보과장(전 KBO 사무총장)이었다. 당시 국가대표 출신 서정환은 원년 삼성 멤버로 합류했지만, 주전에서 밀린 상태였다. 오대석이 6월12일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서 사이클링히트를 치는 등 기세를 올리면서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고, 그는 팀 내에서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해 삼성 서영무 감독님(작고)한테 틈이 날 때마다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조르고 졸랐다. 결국 시즌 후 허락을 얻어냈고, 선수층이 얇은 삼미로 가는 것으로 일이 성사되기 직전이었다. 당시엔 구단이 트레이드를 추진한 것이 아니고, 선수가 알아서 찾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해태 쪽에서 그날 밤 서울집까지 찾아오면서 방향이 바뀌게 됐다. 항간에는 내가 해태로 트레이드되면서 울면서 갔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내가 원해서 트레이드됐으니 웃으며 해태에 갔던 것이었다.”

서 전 감독의 회상이다. 경인선 대신 호남선을 탔다. 현금 1500만원 트레이드. 12월 7일이었다. KBO리그 최초의 트레이드는 이렇게 이뤄졌다. 서정환을 영입한 해태는 이듬해인 1983년부터 우승 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초창기엔 트레이드가 드물었지만, 그래도 최초의 이 트레이드가 성공작으로 판명되면서 구단과 선수 사이에 트레이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는 촉매제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1호 트레이드 서정환부터 최근 롯데와 kt의 2대2 트레이드까지 KBO리그에서는 총 299건의 거래가 성사됐고, 그 사이 641명이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됐다. 올해로 프로야구 36년. 아직 올 시즌이 끝나지 않은 상태지만, 대략 무역시장에서 연평균 8.3건에 17.8명꼴로 이적을 한 셈이다.

KBO리그 최초의 트레이드 주인공 전 KIA 서정환 감독.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우리를 놀라게 한 블록버스터 트레이드

299건의 트레이드 중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임팩트 없는 트레이드도 있었지만, KBO리그 역사를 뒤흔든 블록버스터 트레이드도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트레이드는 1988년 말 나온 롯데와 삼성의 트레이드라고 볼 수 있다. 그해 11월22일 롯데와 삼성은 4대3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왕래한 선수의 이름부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거물들이었다. 바로 롯데 최동원과 삼성 김시진이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롯데가 투수 최동원 오명록·포수 김성현을 주고, 삼성이 투수 김시진 전용권·내야수 오대석·외야수 허규옥을 교환카드로 내놓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불과 한 달 뒤인 12월 20일에 양 구단은 2대2 트레이드를 또 단행했다. 이번엔 삼성 장효조와 롯데 김용철이라는 간판타자가 포함됐다. 롯데는 내야수 김용철과 투수 이문한을 보냈고, 삼성은 외야수 장효조와 투수 장태수를 건넸다. 사실상 한 달 사이에 양 팀에서 6대5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선수노조 설립 문제와 연봉협상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양 구단이 간판스타들을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하자 야구계는 물론 팬들 모두 충격에 빠졌다.

KBO리그 트레이드 역사에서 한꺼번에 5명 이상을 주고받은 대규모 트레이드는 최근 SK와 KIA가 합의한 4대4 트레이드까지 총 16건이 나왔다. 1983년 11월17일 롯데가 임호균을 얻기 위해 삼미에 4명(박정후 권두조 김정수 우경하)을 주는 4대1 트레이드가 이뤄진 것이 시초다. 이어 1986년 10월13일, 롯데가 다시 임호균을 포함해 배경환 양상문 이진우 김진근 등 무려 5명을 삼미의 후신인 청보에 주고, 청보가 정성만 정구선 우경하 등 3명을 롯데에 보내는 5대3 트레이드를 단행하기도 했다. 8명이 오간 트레이드는 이후 한 차례 더 있었다. 2002년 SK와 삼성의 6대2 트레이드. 삼성에서 김기태 김동수 김상진 김태한 이용훈 정경배를 내놓고, SK에서 브리또와 오상민을 건넸다. 한 팀에서 한꺼번에 6명을 준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역대 단일 트레이드에서 가장 많은 선수가 오간 건 2015년 롯데와 kt의 5대4 트레이드로, 총 9명이 엮인 거래였다. 당시 롯데는 장성우 최대성 윤여운 이창진 하준호를 주고, kt는 박세웅 이성민 안중열 조현우를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KBO리그 역사에서 블록버스터 트레이드의 중심에 롯데가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kt 장성우-최대성-하준호-롯데 박세웅-이성민-안중열(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스포츠동아DB·kt wiz



● 대박 혹은 쪽박, 그리고 황당 트레이드

트레이드를 하다 보면 양쪽 모두가 흡족한 ‘윈윈 트레이드’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무릇 거래에는 결과적으로 이득을 보는 쪽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쪽도 있다.

그동안 299건의 트레이드 중 기대했던 선수가 기대만큼 잘한 사례는 차치하고, 기대 이상의 대박을 친 트레이드를 논하자면 역시 2009년 김상현 트레이드를 빼놓을 수 없다. 그해 시즌 개막 후 얼마 지나지 않은 4월20일 LG는 투수 강철민을 영입하면서 KIA에 내야수 김상현과 박기남을 내줬다. 1대2 트레이드에서 보듯, 그때만 해도 무게 중심은 강철민 쪽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김상현이 이적하자마자 잠재력을 꽃피웠다. 2000년 해태 입단 후 33홈런에 그쳤던 김상현은 그해에만 36홈런을 날리며 홈런왕과 시즌 MVP를 거머쥐는 야구인생의 만루홈런을 날렸다. 아울러 약체로 꼽혔던 KIA는 트레이드 효과를 만끽하며 해태 인수 후 처음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2011년 7월31일 넥센이 LG와 2대2 트레이드 때 영입한 박병호(현 미네소타) 역시 대박 트레이드 사례로 꼽히고 있다. 2005년 LG 입단 후 통산타율 0.190에 25홈런에 그쳤던 박병호는 트레이드되자마자 잠재력을 폭발하며 이듬해부터 4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아울러 넥센도 2013년부터 포스트시즌에 계속 진출하면서 트레이드 효과를 톡톡히 봤다.

트레이드는 박병호처럼! KBO리그 초반 레이스의 최대이슈는 단연 트레이드다. 벌써 4차례에 이르는 맞교환이 성사될 만큼 각 구단들이 장벽을 낮추고 트레이드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이다. 이들이 바라는 소망은 역시 하나. 영입한 선수가 새 팀에서 발돋움해 전력 보강을 완성하는 일이다. LG 시절 만년 유망주로 꼽혔지만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으로 옮긴 뒤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박병호. 스포츠동아DB


때론 예상 못한 일도 있었다. 삼성 간판스타였던 강기웅은 1996년 11월18일 현대 최광훈 이희성과 2대1 트레이드가 발표되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경남 창원에서 장인이 운영하는 병원일을 도와야한다”며 현대로 가지 않고 임의탈퇴를 받아들이며 유니폼을 벗었다. 2004년 1월14일 LG에서 SK로 트레이드된 이상훈은 시즌 중반이던 6월, “LG 타자들을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며 은퇴를 선언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한편으로 보면 선수들은 친정 팀에 대한 무한애정으로 멋있게 유니폼을 벗었지만, 트레이드로 영입한 팀들은 황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SK 시절 이상훈.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자고 나면 트레이드, 다음은?

올 시즌 트레이드가 시즌 초반부터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활발해지면서 각 구단 관계자와 감독, 선수들도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팬들도 자고 일어나면(혹은 자기 전에) 깜짝 놀랄 만한 트레이드가 터지기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전력도 전력이지만, 프로야구 활성화를 위한 바람직한 현상으로 분석되고 있다.

야구계는 최근의 트레이드 열풍을 우연의 일치로만 보지 않는다. A구단 단장은 “최근 여기저기서 트레이드가 터지면서 야구판이 재미있어지고 있다”면서 “선수 출신 단장들이 많아지고, 선수 출신이 아니더라도 과거와는 달리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단장들이 많아지면서 트레이드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B구단 단장은 “과거엔 괜히 트레이드를 했다가 손해를 보고 시끄러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구단이 많았지만, 최근 갑자기 각 구단마다 트레이드를 활발하게 하자 이제는 트레이드를 안 하면 괜히 무능하고 일 안하는 구단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무조건 손해를 안 보겠다는 생각보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다. 앞으로 팀에 필요한 선수 1~2명을 바꾸는 트레이드는 물론 시즌 중에 깜짝 놀랄 만한 대규모 트레이드가 더 나올 수도 있다. 솔직히 스프링캠프부터 예년보다 트레이드와 관련한 얘기들이 활발하게 오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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