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의 야구學] 리빌딩, 팀 재건의 필수요소는 무엇일까

입력 2017-08-1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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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에 리빌딩은 숙명이다. KIA는 조범현 전 감독 시절 성장한 김선빈-양현종-안치홍(왼쪽부터) 등이 올 시즌 주축 역할을 하며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팀 전력을 새롭게 개편하는 ‘리빌딩’은 국내 프로야구 구단의 지상 최대 난제다. 당장 눈앞의 성적을 포기하면서 팀 미래를 위해 매번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숱한 비난과 원성이 뒤따르지만, 어느 누군가는 팀의 미래를 위해 이 무거운 멍에를 짊어져야 한다. 어렵게 리빌딩 작업이 이뤄진다 해도 문제다. 이제 솟아나기 시작한 ‘새순’을 마치 ‘열매’인 듯 생각하는 구단 수뇌부의 성급한 행보 때문이다. 결국 리빌딩은 최종 마지막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미완의 작품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국내야구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리빌딩. 야구기자 2년차 장은상 기자가 묻고,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이자 최고의 리빌딩 전문가인 조범현 전 감독이 답했다.


Q : 메이저리그에서는 리빌딩에 나서거나 성공한 팀들의 모습을 매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익숙한 야구용어는 아닌데요. 구체적으로 리빌딩이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요.

A : 말 그대로 팀 재건이죠. 모든 팀은 비시즌에 철저한 자체 전력분석을 실시합니다. 선수 개개인부터 전체적인 팀플레이까지 고려한 철두철미한 계산으로 데이터를 만들죠. 이 분석이 팀의 한 시즌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리빌딩의 시작은 이 단계부터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주축 선수들의 기량, 부상선수들의 복귀 시점, 어린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 등 총체적인 면에서 한 팀의 시즌 전력을 예상해보는 거죠. 핵심 전력의 노쇠화와 부상 등으로 팀 전력이 매우 약하다고 판단되면 그 팀은 리빌딩에 들어가야 합니다.


Q : 리빌딩은 당장의 성적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성적우선주의인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작업인데요.

A :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모든 구단은 자기 선수들이 최형우나 이승엽 같은 선수처럼 성적을 내주길 기대해요. 하지만 리빌딩 과정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어린선수들이 1군 경기를 보통 소화하죠. 당장 성적을 낸다는 게 비정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첫 시작입니다. 구단과 현장의 손발이 잘 맞는 게 최우선이에요. 팀 재건을 위한 구단의 방향성 확립과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현장의 몸놀림이 톱니바퀴 돌 듯 잘 맞물려야죠. 이에 따라 리빌딩 시간은 앞당겨 질수도 있고, 더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


Q : 무조건적으로 어린선수만 기용하는 것이 리빌딩은 아닐 텐데요. 베테랑 선수들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A :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은 정말 중요합니다. 다만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기량은 분명 유지하고 있어야죠. 코칭스태프가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역 선배에게 전해 듣는 것만큼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고 인성적으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선수는 리빌딩 과정에서도 안고 가야 할 필요가 있죠. 후배들과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으니까요. 또 최근에는 선수생명도 점차 늘어나고 있잖아요? 30대 중후반에도 2~3년을 더 뛸 수 있는 베테랑들이 즐비해요. 이런 선수들에게 배울 수 있는 건 정말 많죠. 후배들이 그런 선배들의 길을 따라 갈 수만 있다면 그 팀의 전력은 자연스레 두꺼워질 겁니다.

SK 감독 시절 조범현. 사진제공|SK 와이번스



Q : 감독님께서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리빌딩의 대가이신데요. 특별히 기억나는 과정이 있으신가요?

A : SK 감독으로 부임할 때는 저도 초보 사령탑이라 경험이 많지 않았어요. 다만 이전부터 오랜 시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선수를 보는 눈은 자신이 있었죠. 당시에는 어리기만 했던 최정, 정근우, 조동화 등 여러 선수들이 제 눈에는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때는 리빌딩의 개념 자체도 없었어요. 다만 ‘이 선수들이 팀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주축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고맙게도 그 선수들이 지도를 잘 따라줬고, 핵심선수로 성장했죠. KIA에서는 SK의 경험을 발판 삼아 김선빈, 안치홍, 양현종 같은 어린선수들을 바로 1군에 올렸어요. 이미 한번 공부를 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죠.


Q : 현장을 총괄하는 감독으로서 받는 압박감은 상당할 것 같은데요. 어떤 생각으로 리빌딩을 과감히 밀어 붙이셨나요?

A : 물음표 전력인 선수를 썼을 때 쏟아지는 팬들의 비난은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감독이 리빌딩에 대한 결심을 세웠다면, 그 판단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해요. 묵묵히 견디고, 성공시키는 게 감독의 역량이죠. 처음 KIA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정말 막막했어요. 당시 팀 전력으로는 도저히 우승을 할 수 없었죠.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예상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면 내 다음 사람을 위해서라도 리빌딩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리빌딩 과정에서 기용하는 선수가 당장 부족한 선수라는 걸 감독도 알아요. 하지만 1~2년 뒤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깨무는 거죠. 그게 프로야구 감독의 숙명입니다.

정리 |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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