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팀에 리빌딩은 숙명이다. KIA는 조범현 전 감독 시절 성장한 김선빈-양현종-안치홍(왼쪽부터) 등이 올 시즌 주축 역할을 하며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Q : 메이저리그에서는 리빌딩에 나서거나 성공한 팀들의 모습을 매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익숙한 야구용어는 아닌데요. 구체적으로 리빌딩이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요.
A : 말 그대로 팀 재건이죠. 모든 팀은 비시즌에 철저한 자체 전력분석을 실시합니다. 선수 개개인부터 전체적인 팀플레이까지 고려한 철두철미한 계산으로 데이터를 만들죠. 이 분석이 팀의 한 시즌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리빌딩의 시작은 이 단계부터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주축 선수들의 기량, 부상선수들의 복귀 시점, 어린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 등 총체적인 면에서 한 팀의 시즌 전력을 예상해보는 거죠. 핵심 전력의 노쇠화와 부상 등으로 팀 전력이 매우 약하다고 판단되면 그 팀은 리빌딩에 들어가야 합니다.
Q : 리빌딩은 당장의 성적이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성적우선주의인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작업인데요.
A : 쉽지 않은 게 현실이죠. 모든 구단은 자기 선수들이 최형우나 이승엽 같은 선수처럼 성적을 내주길 기대해요. 하지만 리빌딩 과정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어린선수들이 1군 경기를 보통 소화하죠. 당장 성적을 낸다는 게 비정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첫 시작입니다. 구단과 현장의 손발이 잘 맞는 게 최우선이에요. 팀 재건을 위한 구단의 방향성 확립과 이를 달성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현장의 몸놀림이 톱니바퀴 돌 듯 잘 맞물려야죠. 이에 따라 리빌딩 시간은 앞당겨 질수도 있고, 더 늦춰질 수도 있습니다.
Q : 무조건적으로 어린선수만 기용하는 것이 리빌딩은 아닐 텐데요. 베테랑 선수들의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A :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은 정말 중요합니다. 다만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기량은 분명 유지하고 있어야죠. 코칭스태프가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역 선배에게 전해 듣는 것만큼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고 인성적으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선수는 리빌딩 과정에서도 안고 가야 할 필요가 있죠. 후배들과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으니까요. 또 최근에는 선수생명도 점차 늘어나고 있잖아요? 30대 중후반에도 2~3년을 더 뛸 수 있는 베테랑들이 즐비해요. 이런 선수들에게 배울 수 있는 건 정말 많죠. 후배들이 그런 선배들의 길을 따라 갈 수만 있다면 그 팀의 전력은 자연스레 두꺼워질 겁니다.
SK 감독 시절 조범현. 사진제공|SK 와이번스
Q : 감독님께서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리빌딩의 대가이신데요. 특별히 기억나는 과정이 있으신가요?
A : SK 감독으로 부임할 때는 저도 초보 사령탑이라 경험이 많지 않았어요. 다만 이전부터 오랜 시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선수를 보는 눈은 자신이 있었죠. 당시에는 어리기만 했던 최정, 정근우, 조동화 등 여러 선수들이 제 눈에는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때는 리빌딩의 개념 자체도 없었어요. 다만 ‘이 선수들이 팀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주축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고맙게도 그 선수들이 지도를 잘 따라줬고, 핵심선수로 성장했죠. KIA에서는 SK의 경험을 발판 삼아 김선빈, 안치홍, 양현종 같은 어린선수들을 바로 1군에 올렸어요. 이미 한번 공부를 했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죠.
Q : 현장을 총괄하는 감독으로서 받는 압박감은 상당할 것 같은데요. 어떤 생각으로 리빌딩을 과감히 밀어 붙이셨나요?
A : 물음표 전력인 선수를 썼을 때 쏟아지는 팬들의 비난은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감독이 리빌딩에 대한 결심을 세웠다면, 그 판단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해요. 묵묵히 견디고, 성공시키는 게 감독의 역량이죠. 처음 KIA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정말 막막했어요. 당시 팀 전력으로는 도저히 우승을 할 수 없었죠.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예상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면 내 다음 사람을 위해서라도 리빌딩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리빌딩 과정에서 기용하는 선수가 당장 부족한 선수라는 걸 감독도 알아요. 하지만 1~2년 뒤를 바라보면서 입술을 깨무는 거죠. 그게 프로야구 감독의 숙명입니다.
정리 |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