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투수의 안타, 당신이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은?

입력 2017-08-2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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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렸다. 9회초 2사 1, 2루에서 두산 투수 김강률이 1타점 적시타를 날리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첫 스윙 때는 허술했는데, 안타 친 순간엔 폼이 나오더라고. 그런데 사실 공이 와서 맞아준 거지. 허허.”

두산 한용덕 수석코치는 23일 인천 SK전을 앞두고 전날 9회에 적시타를 친 투수 김강률이 화제에 오르자 당시 상황을 복기하며 웃었다. 5-6으로 뒤진 8회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김강률은 9회초 9-6으로 역전한 뒤 계속된 2사 1·2루서 SK 6번째 투수 백인식을 상대로 우중간 안타를 날려 2루주자 박세혁을 불러들였다. 볼 3개를 골라낸 뒤 4구째에 어설픈 폼으로 시원하게 헛스윙을 하더니 곧바로 5구째에 제대로 된 타격폼으로 깨끗한 적시타를 뽑아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프로 데뷔 10년 만에 첫 타석에 들어서 첫 안타, 첫 타점을 올리며 ‘10할 타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두산 투수 김강률이 22일 인천 SK전 9회초 타석에서 우전 적시타를 날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투수의 안타는 언제나 짜릿한 추억으로 남는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선동열에게 안타 맞고 정명원에게 분풀이한 한용덕

투수 출신인 한 코치는 그러면서 “나도 사실 안타를 때렸는데”라며 슬쩍 옛날자랑(?)을 했다. 1992년 4월 19일 청주구장. 지금은 추억이 된 태평양과 더블헤더 제2경기. 이날 빙그레 선발이었던 그는 완투승을 올리면서 1타점 적시타까지 뽑았다. 그것도 4-3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8회말 1사 2루서 중전 적시타를 때려 2루주자 이강돈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9회초 김인호에게 솔로홈런을 맞고 1실점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적시타가 아니었다면 완투승도 기록하지 못할 뻔했다. 태평양의 7연승 행진을 멈춰 세운 일타였다.

한 코치는 “그때 투수가 정명원(현 kt 코치)이었는데, 나한테 그 안타를 맞고 한동안 좋지 않았다”며 추억의 조각을 더듬었다. 실제로 정명원은 전년도인 1991년 12승6패 14세이브, 방어율 2.25를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1992년엔 7경기에 등판해 3승1패를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불의의 팔꿈치 부상으로 1993년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타자로 통산 3타수 1안타를 기록해 3할타자(타율 0.333)로 남아 있는 한 코치지만, 정작 그도 투수에게 안타를 맞은 악몽을 지니고 있다. 상대는 바로 국보투수 선동열(현 국가대표 감독)이었다.

선동열은 해태 시절이던 1988년 7월 21일 광주 빙그레전에서 1-1 동점인 9회말 2사 1루 때 타석에 등장해 한용덕을 상대로 우전안타를 때렸다. 그러나 데뷔 첫 안타의 기쁨도 잠시, 선동열은 연장 13회초에 재일교포 고원부에게 홈런(시즌 첫 피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선동열은 훗날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주니치로 진출해 1999년 요미우리전에서 2타점 2루타를 날리기도 했지만, 한용덕에게 뽑아낸 이 안타가 KBO리그에서는 유일한 안타였다. 선동열은 KBO리그 통산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한용덕.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원년 투타 겸업 김성한의 추억

요즘 일본에서 투타를 겸업하는 오타니 쇼헤이(니혼햄)가 화제지만, KBO리그에서도 원년에 해태 김성한(현 광주 CMB 해설위원)이 있었다. 단순히 투타를 겸업한 것이 아니었다. 선수가 부족했던 해태에서 1982년 투수로 10승, 타자로 3할 타율(0.305)을 작성했다. 한 시즌 80경기로 치러진 그해 타자로 전 경기에 출장해 69타점을 치면서 KBO리그 초대 타점왕에 올랐고, 두 자릿수 홈런(13개)과 도루(10개)를 기록했다. 투수로는 26경기에 등판해 3완투, 1완봉을 곁들여 10승5패1세이브, 방어율 2.88을 마크했다. 팀 내 최다승과 방어율 1위였다. 해태는 ‘팔방미인’ 김성한이 등판하는 날에는 지명타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김성한은 그해 두 차례나 한 경기에서 결승타(당시 승리타점)를 날리면서 승리투수를 동시에 기록하기도 했다. 1995년 은퇴할 때까지 프로야구를 뒤흔든 강타자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1986년까지 간간히 마운드에 올라 투수로도 통산 15승10패2세이브, 방어율 3.02의 성적을 남겼다.

선수 시절 김성한.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우리는 그들을 ‘전설의 10할 타자’로 부른다

올 시즌 김강률에 앞서 LG 정찬헌이 ‘10할 타자’에 등극한 바 있다. 7월 21일 대구 삼성전에서 4-2로 앞선 연장 11회초 2사 만루 때 상대투수 이승현을 상대로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때려내 화제를 모았다. 당시 2-2 동점이던 10회말 마운드에 올라 1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까지 챙겼다.

이들에 앞서 투수 중 ‘전설의 10할 타자’를 꼽자면 고(故) 최동원을 빼놓을 수 없다. 롯데 시절이던 1984년 8월 16일 구덕구장 MBC전. 1-1 동점이던 8회말 1사 만루서 유종겸(현 설악고 코치)을 상대로 2타점 우월 2루타를 날려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김성한을 제외하면 KBO리그에서 최초로 승리투수와 결승타를 동시 기록한 순간이었다. 최동원은 통산 1타수 1안타 10할 타율을 남기고 하늘로 떠났다.

가득염(현 kt 코치)은 SK 시절이던 2008년 5월 27일 광주 KIA전에서 유동훈(현 KIA 코치)을 상대로 볼카운트 0B-2S에서 삼진을 잡으러 들어온 공을 가볍게 밀어 쳐 좌전안타를 날렸다. 주유소에서 “기름 얼마나 넣어드릴까요?”라고 물으면 “가득염”이라고 대답하곤 했다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 가득염. 그의 통산타율 또한 10할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밖에 마정길(현 넥센 코치)은 2003년, 윤근영(현 kt)은 2013년 한화 유니폼을 입고 1타수 1안타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 7월 21일 대구 삼성전에서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때려낸 정찬헌.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끝내기 안타, 밀어내기 볼넷…그 밖의 추억들

마무리투수들의 안타 역시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OB 윤석환(통산 3타수 1안타)은 1985년 6월 9일 삼성 권영호를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기록한 뒤 세이브를 따냈고, 임창용(통산 7타수 1안타)은 해태 시절이던 1998년 4월 27일 OB전에서 4-2로 앞선 9회초 2사 1·2루 때 상대 마무리 진필중을 상대로 펜스 하단을 때리는 2타점 2루타로 두들긴 뒤 세이브를 올리기도 했다.

투수의 타격을 논할 때 송진우의 대타 끝내기 안타를 빼놓을 수 없다. 아마추어 시절 타격에 소질을 보였던 한화 송진우(통산 4타수 1안타)는 2001년 6월 3일 청주 LG전서 7-7 동점인 9회말 1사 2·3루 때 대타로 나서 신윤호를 상대로 끝내기 우전안타를 날렸다. 역대 유일한 투수의 대타 끝내기안타다. 특히 신윤호는 그해 다승왕이었다는 점에서 송진우의 안타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한편 조현근은 두산 시절이던 2005년 6월 7일 대구 삼성전에서 9회초 2사 1·2루 때 대타로 나서 2타점 3루타를 때려냈다. 역대 유일한 전문투수의 3루타 기록으로 남아 있다. SK 김광현은 신인 시절이던 2007년 8월 30일 수원 현대전에서 전문투수로는 처음으로 밀어내기 볼넷을 기록했다. 이밖에 LG 서승화는 통산 8타수 3안타(0.375)로 타격재능을 자랑했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개의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지만, KBO리그에서는 투타를 겸업한 김성한을 제외하면 순수 투수의 홈런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1998년 임창용의 펜스 직격 2루타가 사실상 역대 KBO리그 투수 중 홈런에 가장 근접한 타구였다. 최초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궁금하다.

이재국 전문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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