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53)은 20여 년간 이 재미를 추구했다. 영화를 볼 때 만큼은 관객이 잡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든다. ‘투캅스’, ‘공공의 적’, ‘실미도’, ‘이끼’ 등도 그렇고 이번 19번째 연출작인 ‘전설의 주먹’도 마찬가지다. 강 감독은 재미를 따졌다.
“영화 나오면 도망가야지”라고 농을 치는 강 감독의 말에서 자신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 인터뷰를 하기엔 이른 감이 있는데.
“영화 나오면 도망가려고….(웃음) 잘되면 좋지만 안 되면 온갖 비난의 화살이 올 텐데 도망가야지. 농담이다. 영화가 언론시사를 해도 크게 이야기할 게 없다. 편하고 쉬운 영화다. 왈가왈부할 것 없이 ‘재밌다’, ‘재미없다’로 반응이 단순할 것 같다.”
- ‘흥행보증수표’ 감독 아닌가,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을 텐데 우려는 없는지.
“그런가? 허허. 전적으로 칭찬으로 생각한다. 운이 좋은 감독이기도 하고. 수식어에 대한 부담감은 없고 책임감은 생긴다. 늘 관객들과 무엇으로 소통할까, 어떤 웃음과 감동을 전달해야할지 머리를 싸맨다. 오랜만에 나왔는데 욕을 먹으면 안 되니까. 관객들이 나에겐 제일 무서운 존재지.”
- 관객이 무서운가. (웃음)
“그럼, 무섭지. 내 영화를 평가해주는 사람들인데…. 나도 자주 영화를 보러 가는데 사람들이 영화가 재미없으면 주절주절 이야기가 많더라.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엄청난 보상을 받길 기대한다. 그래서 한 편, 한 편 재미에 충실하고 있는 거다. 영화가 재미가 없으면 되겠나. 이번 ‘전설의 주먹’도 재미있고 가슴 찡하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 ‘전설의 주먹’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생방송으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매력적이더라. 스크린으로 가져다가 화려하게 만들고 싶었다. 과거 싸움으로 ‘전설’이라 불리던 고교동창생들이 성인이 돼서 TV쇼에 출연해 진짜 주먹을 겨루는 거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강우석, 감각 안 죽었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관객은 희한하게도 마음고생하며 찍은 작품을 사랑해준다. 관객 눈에도 성의가 담긴 영화를 보이는 것 같다. 확실히 반응이 다르다.”
- ‘전설의 주먹’은 시놉시스만 봐도 고생길이 보인다.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몸을 던졌다. 격투를 하니까 진짜 맞아야 했고 얼굴도 몸도 뭉개졌다. 얼굴이 맞아서 떨리는 장면은 특수효과로 안 되니까. 다들 맞느라 죽을 뻔 했다. 결과물을 스크린으로 보면 관객들도 몸을 ‘움찔’하며 통쾌해할 것 같다.”
- 유준상의 부상은 심각했다고 들었다.
“무릎을 아예 못 쓸 뻔했다. 무릎 다치고 깁스를 해가며 촬영에 임하더니 의식을 잃었다. 바로 수술을 받고 6주후에 촬영에 들어갔다. 성지루는 허리를 심하게 다쳤고, 다른 배우는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부상 때문에 어려움에 맞닿은 적은 나 역시 처음이었다. 애처로웠다. 황정민은 ‘내 인생의 마지막 액션’이라 했고 윤제문은 ‘다음 촬영이 두렵다’고 했다.”
- 그럼에도 배우들은 여전히 강우석 감독을 갈망한다.
“영화를 만들며 나름의 철칙이 있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그리고 내 영화의 배우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감독은 작품을 통해 배우를 키우는 일종의 책임감이 있다. 배우는 내 작품을 위해 엄청난 열정을 쏟아 붓고 나는 그런 그를 빛나게 해주는 거다. 내 영화를 보며 ‘저 배우, 진짜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 그래서 영화는 재미있나. (웃음)
“허허. 영화에 빠져들게, 물 흐르듯 영화를 보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격투장면을 제외하고 언어나 신체적으로 폭력적인 면은 걷어냈다. 초등학생부터 중장년까지 폭넓게 볼 수 있게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니까.”
- 감각이 살아있다는 평을 듣고 싶다고 했다.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감각’타령을 한다면 말이 안 된다. 매주 개봉하는 영화를 다 본다. 밤에는 TV 드라마도 보고 서점에 가서 신간서적도 살펴본다. 영화판에서는 물리적 나이는 정말 숫자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60대에 만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57세에 ‘쥬라기공원’과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었다. 정지영 감독님도 67세에 ‘부러진 화살’을 만들었는데 놀랄 만한 일이 아닌가. 다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나게 젊고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고 있는 거다.”
- 한국영화의 新 르네상스 시대다. 다시 시작할 각오가 궁금하다.
“이런 시대에는 거품이 생기다가 곧 사라진다. 이제 영화인들은 질로 승부해야 할 때가 왔다. 재미있고 좋은 영화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한다. 나 역시 끊임없이 관객을 관찰하고 눈치보고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기대해 달라.”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영화사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