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밥상에숟가락얹은투애니원´참잘했어요´

입력 2009-04-19 08: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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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비평 YG엔터테인먼트 신인 여성4인조 그룹 ‘투애니원(2NE1)’ 론칭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른바 ‘숟가락 얹기’ 논란이다. 투애니원 데뷔 싱글 ‘롤리팝(Lollipop)’은 같은 소속사 빅뱅과의 협연작이다. 말이 협연이지 사실상 빅뱅이 메인이고 투애니원이 피처링한 정도라는 것이다. 또한 뮤직비디오도 빅뱅 위주로 제작돼 있고, 빅뱅을 등에 업고 데뷔곡부터 LG 싸이언 CM송으로 타이업돼 지나치게 뻔뻔한 편승형 데뷔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뻔뻔스럽다기보다 상당한 고심을 기울인 모양새다. 핵심을 잘 뀄다. YG는 지금껏 마케팅 면에서 실패한 일이 거의 없다. 어떤 방식을 동원하건 항상 시장침투에는 성공해왔다. 투애니원도 그런 감각적 판단의 산물이다. YG가 투애니원에 적용한 마케팅은 흔히 ‘동반 마케팅’이라 불린다. 대중문화산업에 있어 신상품을 론칭하는 데 가장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동반 마케팅은 크게 따라잡기형과 합작형으로 나뉜다. 여기서 따라잡기형은 ‘송혜교 닮은꼴’ 등 캐치프레이즈로 외모상의 이목을 끄는 방식과 ‘여자 비’라는 식으로 활동행태 면에서 유사성을 강조하는 미투(Me Too) 마케팅 방식으로 나뉜다. 전자가 주로 배우에 해당된다면, 후자는 주로 뮤지션에 적용된다. 반면 합작형은 주로 뮤지션에 적용되며, 크게 셋으로 다시 나뉜다. 먼저 비슷한 콘셉트, 급의 인물들이 만나 플러스 효과를 내는 방식이 있다. 마돈나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김민종과 손지창 등의 협연이 예다. 다음으로, 서로 다른 콘셉트이지만 급은 같은 인물끼리 만나 화학작용을 노리는 방식이 있다. 스팅과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협연,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의 협연 등이 예다. 마지막으로, 투애니원-빅뱅으로 활용된 ‘위에서 밑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있다. 근래 들어 연예기획사에서 영화, 드라마까지 제작하는 겸업이 속속 등장해 배우들 사이에도 ‘위에서 밑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단계다. 문제는, 이 같은 동반 마케팅이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잡기형의 경우, ‘송혜교 닮은꼴’ ‘임수정 닮은꼴’이 성공한 일이 없다. 애초 송혜교, 임수정이 멀쩡히 활동하고 있는데 대체품이 필요할 리 없다. 대중의 관심도 일시적이며, 송혜교, 임수정의 기존 아우라에 눌려 오히려 닮은꼴 신인은 각인이 안 된다. 뉴스 클릭만 높아지지 론칭용으론 빵점이다. 활동 행태 면에서 유사성을 강조하는 ‘여자 비’ 식도 효과가 안 난다. 활동 행태라 봤자 다들 크게 다르지 않다. 댄스가 중심이라며 유사성을 잡아도 그런 가수들이 100명도 넘는다. ‘여자 비’ 손담비조차도 그 캐치프레이즈로 뜬 게 아니라, ‘우리 결혼했어요’와 ‘미쳤어’가 동시에 튀어나오며 콘텐츠-사생활 간 갭으로 이목을 끈 경우다. 합작형도 문제가 있다. 플러스 효과를 내는 방식과 화학작용을 노리는 방식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지만, ‘위에서 밑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선별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 아티스트 계열인 경우 이런 것도 효과를 내지만, 콘셉트가 승부처인 아이들(idol)은 ‘선배’ 아우라에 묻혀버리기 쉽다. 동반 마케팅 천국 일본 예를 봐도 그렇다. 아티스트 계열인 아야카와 고부쿠로의 콜래버레이션은 신예 아야카를 론칭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헬로 프로젝트가 ‘모닝구 무스메의 동생뻘 신인그룹을 뽑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건져 올린 베리즈코보 등은 본체 모닝구 무스메에 눌려 아직까지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투애니원의 론칭이 주목받을 만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투애니원은 사실상 아이들 그룹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YG로서는 특이할 정도로 비주얼이 출중한 멤버들을 모았으며, 씨엘은 ‘보아식으로 키우겠다’며 사전 하이프를 뿌린 미래 아이들 후보, 산다라박은 이미 필리핀에서 아이들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미 국내 여성 아이들 그룹 시장은 꽉 차 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양대산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틈새에 카라가 마니아층을 끌어 모으고 있다. 끼어들기가 힘들다. YG의 마케팅 능력은 여기서부터 발휘된다. 애초 투애니원의 구성부터가 그렇다. 솔로로 데뷔한다고 하이프를 던진 멤버, 애초 타국 솔로였던 멤버를 함께 끼워 넣어 기획사 제조상품이 아닌 ‘외인부대’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리고 난 뒤 ‘여자 빅뱅’이라는 따라잡기 캐치프레이즈를 날렸다. 오디션을 통한 외인부대 빅뱅과 구성방식 일치를 암시한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는 그런 공통점을 쉽게 연상하기 힘들다. 그저 ‘같은 YG니 여자 빅뱅’이라는 인식밖에 안 든다. 여기서 실제 빅뱅과의 협연곡 ‘롤리팝’을 내밀었다. 따라잡기에서 합작형으로 빠르게 이동한 것이다. 같은 합작형이더라도 ‘여자 빅뱅이 실제 빅뱅과 같이 부른 노래’가 나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먼저 그룹의 전체 풍이 암시된다. ‘롤리팝’이 그렇듯, 빅뱅과 비슷한 시부야계 일렉트로니카로 가리라는 이미지를 정확히 심어준다. 곡의 상당부분을 빅뱅이 불렀으니 이런 이미지는 더 명확해진다. 어차피 신인 여자그룹 데뷔곡은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진다. 원더걸스도 소녀시대도 모두 그랬다. 그저 신고식 격으로 소모되는 데뷔곡을 이런 식으로 기능시키면 낭비를 막게 된다. 여기서 더 나간다. 일단 협연으로 노래 풍을 일치시키니 또 다른 예상도 가능해졌다. 빅뱅처럼 ‘아이들과 아티스트의 중간지점’으로 가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지상으로 ‘누가 뭐래도 아이들’인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와의 차별성이 명확히 생긴다. 따라서 타깃 시장도 달라진다. 투애니원은 빅마마,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이 차지하고 있는, 그러나 신진이 등장하지 않아 어느 정도 노쇠해있는 시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아이들 시장 파이 나눠먹기가 아니라 아티스트형 아이들 시장의 ‘물갈이’로 들어간다. 그리고 여기까지 들어오면 처음 무의미하게 던져놨던 ‘여자 빅뱅’ 캐치프레이즈가 마침내 효력을 발휘한다. 빅뱅과 유사한 입지, 유사한 곡 풍, 유사한 시장임이 밝혀지고 나면, 외인부대 구조 등 또 다른 유사성이 계속 추적된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진정한 ‘여자 빅뱅’이 완성되고, 성공 콘셉트에서 성(性)만 교체시킨 시장복사 전략에 시동이 걸리게 된다. 절묘한 마케팅 전략이다. 동일 콘셉트 동반 마케팅으로 일단 크게 그림을 그려놓은 뒤, 그 내부에 갖가지 세부 전략들을 이리저리 잇고, 얽어놓아 복잡한 구조의 론칭 전략을 그려냈다. 여기에 모든 론칭의 최상위급인 CM 타이업까지 붙여 방점을 찍었다. 숟가락 얹기와 묻어가기는 다르다. 묻어가면 존재감이 희미해지지만, 숟가락을 얹으면 자신을 이해시키기가 쉽다. 투애니원은 숟가락을 제대로 얹었고, 첫 술을 제대로 삼켰다. 이후 행보는 알 수 없지만, 론칭 단계에선 분명 성공이다. YG 마케팅을 지켜보는 일은 이래서 늘 흥미롭다. JYP식 ‘허세 마케팅’도 늘 과격하고 자극적이어서 눈길을 끌지만, YG는 정말로 ‘고정관념의 빈 틈’을 치고 들어간다. 가장 섬세하고 정교하며 대중 정서의 흐름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 반대가 SM인 셈인데, SM의 경우 전략적 승부라기보다 권력과 영향력의 활용이어서 같은 맥락으로 보긴 힘들다. SM이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면, YG는 ‘되는 데 계산이 복잡해 잘 안 보이는 것’을 실행해 특수시장을 잠식한다. 아이들 그룹 성공은 본래 마케팅에 절반 이상이 달려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성공했다고 너도나도 일단 달려들 생각부터 하지 말고, 마케팅 전략부터 미리 세워놓을 필요가 있다. SM 같은 권력이 없다면, YG처럼 머리라도 잘 써야 살아남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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