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왜 미녀는 야수를 선택할까

입력 2010-01-07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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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유해진 커플로 본 '미녀와 야수'의 심리학

새해 벽두부터 불거진 김혜수-유해진의 열애설이 양측의 연인관계 공식 선언으로 이어지면서 충격과 환호를 동시에 낳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이자 글래머 스타로, 또 '에지' 있는 40대 여성의 롤 모델로 꼽히는 김혜수. 그녀가 선택한 남자가 '개성 있는' 외모의 유해진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는 반응이 가장 많다.

김혜수-유해진 커플이 동반 출연한 영화 ‘타짜’의 2006년 9월 시사회 모습. 우정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으로 발전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사진 더 보기



김혜수란 배우의 존재감 때문에 큰 화제가 되긴 했지만 사실 연예계 '미녀와 야수' 커플의 탄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시 최근 연애 사실을 공개한 박정아-길 커플도 같은 사례다. 서구적인 이목구비에 'S라인'을 자랑하는 박정아와 대머리인데다 뚱뚱한 길의 조합 역시 이질적으로 여겨졌다.

지난해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 결과 공효진-류승범이 최고의 '미녀와 야수' 커플로 꼽히기도 했다.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서정희-서세원 커플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할리우드에서도 심심치 않게 '미녀와 야수' 커플의 등장이 화제가 된다. 조각 미남 벤 애플랙과 결별하고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라틴 가수 마크 앤소니와 결혼한 제니퍼 로페즈가 대표적이다.

'미녀와 야수' 커플이 공개될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왜 그녀는 그를 선택했을까. 그의 숨겨진 매력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미녀가 야수를 선택하는 이유

미녀가 야수에 끌리는 이유는 여성 특유의 심리 때문.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호받고 싶어 하는 여성의 본능을 들어 설명했다.

"야수는 바람피울 확률이 적고, 평생 나만 바라볼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런 그라면 내게 평생 헌신적인 사랑을 하리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몸문화연구소 김종갑 소장(건국대 영문학과 교수)은 '미녀와 야수' 커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왜 대다수의 남성들이 미녀를 얻는데 총력을 기울이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성공한 남자들은 자신의 성공을 밖으로도 '홍보'하고 싶어 하는데 이쁜 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성공한 남성이 선택한 젊고 예쁜 전업주부 아내를 일컫는 신조어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는 이 같은 '전시효과'를 반영한 표현이다.

힙합듀오 ‘리쌍’의 멤버 길과 ‘주얼리’출신의 박정아. 길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외모를 소재로 한 개그를 주로 구사한 터라 미녀 가수 박정아와의 만남이 더욱 큰 화제를 모았다. 스포츠동아 자료 사진 ☞ 사진 더 보기



그러나 사실 대중이 열광하는 진정한 의미의 '미녀와 야수' 커플은 이처럼 성공한 남성이 예쁜 여성을 차지하는 형태가 아니다. 경제적 또는 사회적 지위가 비슷하거나 여성 쪽이 오히려 앞서는데도 불구하고 미녀가 당당히 '야수'를 선택하는 경우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이러한 점에서 이미 최고의 스타가 된 서세원이 갓 데뷔한 신인 서정희와 결혼한 것은 김혜수-유해진, 박정아-길의 사례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둘 다 전통적인 미남 미녀가 아니고,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하다는 등 공통점이 많아 '평등한' 인상을 주는 공효진-류승범 커플 역시 전형적인 '미녀와 야수'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설명했다.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특히 '미녀와 야수' 커플의 경우 맞선이나 소개팅 등 인위적인 관계보다 같은 회사, 업계, 학교 등 동질한 집단 속에서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보니 한 사람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이때 여성들은 외적으로 보이는 '객관적 지표'보다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남성의 '내공'에 베팅을 하게 된다는 것. 김혜수-유해진의 관계 또한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쌓은 우정이 '업그레이드'된 결과다.

미녀가 추남과 사랑에 빠지는 사례가 미남이 추녀와 연결되는 사례보다 더 빈번히 발견되는 이유는 역시 남성과 여성이 이성을 보는 시각 차이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실시한 이상적 배우자상 조사 결과 배우자 선택시 우선적 고려 사항으로 외모를 꼽은 남성은 전체의 20.5%였다. 반면 여성은 6.7%만이 외모를 최우선적 요소로 꼽았다.

이문원 씨는 그러나 미남-추녀 커플이 드문 현상을 심리, 사회학적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차승원, 한석규처럼 배우자의 '미모'가 남편만 못하다고 평가받은 예외적 사례도 많았다는 것. 그는 이보다는 여성이 예쁘지 않으면 화제가 되지 못하는 대중과 미디어의 속성에서 그 답을 찾았다. 미녀와 관련된 스캔들과 이슈는 대중에 의해 열렬히 소비되고 이러한 속성은 연예 관련 보도에서도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김혜수가 유해진과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알파걸’의 주체적 선택이라고 극찬하는 이들이 많다. 또한 대중은 유해진의 ‘행운’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자료 사진 ☞ 사진 더 보기



김혜수가 유해진을 선택한 배경을 여성학적 관점에서 해석해볼 수도 있다. 그가 아름다움과 경제력, 사회적 권력을 모두 갖춘 완벽한 여성이기에 자기 기준에 충실한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여배우와 유명인들이 재벌 또는 톱스타를 자신의 짝으로 선택한다. 사실 이는 일반 여성들의 꿈이기도 하다. 대다수 여배우들처럼 힘 있는 남성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 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 그것만으로 김혜수는 여성들 사이에 '최고의 에지녀'로 각광받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알파걸'이 늘어나면서 김혜수 같은 '주체적' 결정을 하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녀와 야수' 커플에 안티가 없는 이유

김혜수-유해진 커플의 소식이 전해진 후 인터넷 공간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펼쳐졌다. 대중이 '객관적'으로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조합을 굳이 '논리적'으로 해석하려 애쓴다는 점이다. 이 둘이 미남-미녀 커플이었다면 필요 없었을 구구절절한 '해명'을 누리꾼들은 마치 유해진의 대변인이나 된 듯 대신해주고 있다.

'유해진이 사실 음악, 미술, 문학에 조예가 깊다', '충무로에서는 끝내주는 인간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등….

심지어 이 메가톤급 '미녀와 야수' 커플 탄생이 자기 일인 냥 들뜬 분위기다. 인터넷 포털 및 각 언론사 사이트에 오른 관련 기사 댓글에서도 '안티'를 찾기는 어렵다.

이는 노현정 전 KBS아나운서와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3남 정대선 씨의 결혼(2006년)이나, 권상우-손태영 커플의 결혼(2008년) 때와는 상반된 반응이다. 이들의 결혼 소식이 발표되자 대중은 질시가 깃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손태영-권상우 커플의 결혼 기사에는 수많은 ‘악플’이 달렸다. ‘노현정-정대선’ 커플에게도 비슷한 반응이 쏟아졌다. 미남-미녀 커플이나 미녀-재력가 커플에는 대중의 질시가 집중된다. 스포츠동아 자료 사진 ☞ 사진 더 보기



이문원 씨는 "장기화된 경제 불황으로 계급적 갈등이 극심해진 현실에서 젊은 층의 마이너리티적 감수성은 극한까지 치달았다. 이에 외모지상주의 현상까지 극심해지면서 여성들이 대거 '꽃미남 재벌'의 판타지에 빠졌고, 그 만큼 남성들의 상실감과 박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따라서 여러 가지 기준에서 '마이너리티'에 가까운 유해진이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 군림해온 김혜수의 마음을 빼앗았다는 사실은, '동료 마이너리티'인 젊은 남성들에게 위안을 줬다는 것이다.

전문직 전문 결혼정보회사 '메리티스' 권량 대표(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이를 남성들에게는 '나도 희망을 가져야겠다'는 기대감을 주고, 여성들에게는 '저렇게 예쁜 여자도 못생긴 남자와 사귀는데 내 외모에 우리 애인(남편)정도면 성공한 거야'라는 안도감을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기보다 잘 난 남성을 질투하는 남자의 본성과 자기보다 못 난 여성에게 지기 싫어하는 여자의 본성을 고려했을 때 미녀-야수 커플은 남녀 모두의 '질투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안티'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지요."

사실 우리 모두가 남녀 관계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치는 역시 '무한한 사랑'이므로 조건 없는 사랑을 택한 '미녀와 야수' 커플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듀오' 회원관리부 형남규 이사는 "서열화 된 세상에서 계산 없는 사랑을 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이들의 관계는 메마른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추앙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진 brigh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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