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싱스페셜] 김연아-아사다 연기순서의 심리학

입력 2010-02-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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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마오 - 김연아. 스포츠동아 DB

양궁·PK·골프등 대부분 선공 유리
야구의 경우에만 유불리 의견 분분

5조 3번째 … 아사다 다음인 김연아
“딱 적당한 순서”…놀라운 긍정의 힘


운동선수들이 느끼는 압박감에 대해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헌액자’ 리 트레비노는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35달러를 건 4피트짜리 퍼팅을 할 때 주머니에 단돈 5달러만 있는 경우다.” 스포츠심리학적으로도 자기기량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불안감은 더 커진다. 피겨스케이팅 역시 마찬가지.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다면 순서가 경기력에 지장을 줄 리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피겨 선수들은 가장 먼저 연기하는 것을 선호하고, 마지막으로 연기하는 것을 꺼린다. 경쟁자들의 연기를 본 이후라면 그 결과에 따라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 24일(한국시간) 밴쿠버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쇼트에 출전하는 김연아(20·고려대)는 22일 연기순서 추첨에서 5조 3번을 뽑았다. 마지막 순서로 연기하는 짐은 덜었지만 최상의 시나리오(1번)는 아니었다. 라이벌 아사다 마오(20·일본)의 차례는 바로 김연아 직전. 그래도 김연아는 추첨 직후 만족스럽다는 듯 한 손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었다. 소감에서도 “딱 적당한 순서”라고 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체육과학연구원(KISS) 신정택(심리학 전공) 박사는 “스포츠심리학에서 반전이론에 따르면 ‘팩트 자체보다 팩트를 어떻게 지각하느냐’가 경기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른바 인지재구성이다.

2008베이징올림픽 직전 한 메달 유망 선수는 “꿈에서 2라는 숫자가 보인다”며 두려워했다. 금메달을 위해 4년간 땀을 흘렸는데 “꿈에서 은메달이 연상된다”는 것이었다. KISS 연구원은 “시상식에 입장하는 순서는 금메달리스트가 2번째이지 않느냐”는 심리상담으로 선수의 마음을 달랬다. 결국 그 선수는 금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김연아 역시 추첨 결과에 대해 만족한다는 것 자체가 심리적 안정을 대변한다. 신 박사는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순서 자체에 영향을 안 받는 것”이라며 “그 정도가 돼야 피크-퍼포먼스(peak-performance)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압력(압박감)이란 타이어에나 넣는 것”이라고 일소했던 NBA 스타 찰스 바클리처럼 강심장의 상태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에서 양궁여자대표팀을 이끈 문형철 감독의 말처럼 “사람은 다 똑같다.” 피겨와 마찬가지로 양궁과 승부차기(축구), 골프 등 대부분의 종목에서 선공(先攻)이 유리한 이유다. 대한축구협회 조영증 기술교육국장은 “(승부차기에서) 심리적 압박이 덜할 때 킥을 하는 게 유리하다”면서 “다수 팀들이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면 선축을 택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야구의 경우는 초·말 공격에 대한 심리적 유불리 논의가 분분하다. 신정택 박사는 “미국에서 수많은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연구방법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고 했다. 단, 투타로 나누어 비교는 가능하다. 스포츠동아 이효봉 해설위원은 “스트라이크 존과 경기장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낯선 1회초 개시(홈팀) 투수가 심적으로 쫓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이런 경우도 심리적 불안감이 홈팀의 이점과 상쇄되기도 한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원정경기(초 공격)에서 수비보다 공격 위주로 타선을 짠다. 선취점으로 상대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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