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그대 잘가라” 노래 후 김광석 하늘로

입력 2011-01-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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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 세상은 새해 벽두부터 한 어린 가수의 죽음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아직 채 피어나기도 전, 서지원은 스스로를 꺾어버린 꽃이 되었다.

그로부터 5일 뒤인 그해 오늘, 한 가수의 죽음은 생전 그를 사랑했던 많은 이들에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날 새벽 4시, 김광석은 서울 서교동 원음빌딩 4층 자신의 집 거실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그 전날까지도 새로운 앨범 작업에 몰두했던 그의 부고는 어이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김광석은 그렇게 세상과 이별하기 전날,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꽃잎처럼 흘러 흘러/그대 잘가라/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산을 입에 물고 나는/눈물의 작은 새여/뒤돌아 보지 말고/그대 잘가라/…’고 노래했다.

마이크 앞에서 그는 자신의 갈 길을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담으려던 기획 앨범은 기어이 ‘가객’이라는 이름의 유작앨범이 되었고 채 팬들에게 ‘부치지 않은’ 노래는 그해 12월 세상에 나왔다.

1999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가 “근데 광석인 왜 그리 일찍 죽었다니?”라고 쓸쓸하게 말하면서 다시 살아난 김광석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마지막 노래를 피토하듯 불러냈다. 그리고 많은 팬들의 가슴 속에 살아났고 ‘부치지 않은 편지’는 그 마지막 흔적이 되고 말았다.

3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김광석은 처연한 표정으로 내지르는 맑으면서도 곧은 목소리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4년 대학(명지대) 노래패에서 노래한 그는 3년 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에 합류했다. 안치환, 권진원 등과 함께 노찾사에서 현실을 노래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던 그는 이듬해 일군의 동료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 등을 남겼다.

이후 솔로로 나서 1995년 여름, 라이브공연 1000회를 기록하며 콘서트를 통해 꾸준히 팬들을 만났다.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등 숱한 명곡들을 통해 사랑과 희망과 현실과 서정을 노래했다. 공연장을 찾은 팬들에게 특유의 재치 넘치는 언변을 과시하며 그 마음을 몰입시킨 맑고 곧은 목소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곤 한다.

이런 맑음과 곧음을 증명하듯, 시신을 화장했을 때 사리 9과가 나왔다. 불교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1991년 불교방송 ‘밤의 창가’를 진행하며 법정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과 교류했다. 법정 스님으로부터 ‘원음’(圓音, 둥근 소리)이라는 법명을 받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 생을 마친 건물의 이름 원음빌딩도 거기서 나왔다.

그가 떠난지 15주기를 맞는 올해, 김광석을 추억하고 추모하는 공연이 잇따라 펼쳐진다고 한다. 김광석과 김광석의 노래, 김광석의 음성과 김광석의 진정어린 마음이 그리운 분, 서울 대학로 한 켠에 세워진 그의 노래비를 찾아가라. 내친 김에 추모공연을 찾아 함께 그리움에 젖어보는 건 어떨까.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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