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제로’ 임창용 “내가 200억 선수라니 단칸방 시절 생각나”

입력 2011-02-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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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왕’을 향한 힘찬 몸짓 야쿠르트 수호신 임창용이 오키나와 우라소에 시민구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프링캠프에서 불펜 피칭을 하고 있다.

한국서 퇴물 취급 보란듯 日 성공신화
‘日시즌 최다 46S 깬다’ 세이브왕 선언

돈 버니 어릴적 단칸방 추억 새록새록
고생 많으셨던 아버지…효도 생각 간절

지금은 야구가 애인…결혼은 은퇴후에
일본에 간다고 했을 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도 내리막길에 제대로 못하는데 무슨 일본이냐”며 콧방귀를 뀌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퇴물 취급을 당하던 그가 일본에서 보란 듯이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일본프로야구 3년간 96세이브를 거두며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을 얻었고, 지난해 말 계약기간이 만료된 뒤 야쿠르트와 3년간 무려 15억엔에 재계약하는 잭팟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맨발에서 벤츠 신화를 썼다. ‘창용불패’, ‘야쿠르트의 수호신’ 임창용(35). 9일 스프링캠프지인 오키나와현 우라소에 시민구장에서 만났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의 어린시절

앞으로 3년간 야쿠르트에서 뛴다면 200억원이 보장된다. 그는 “솔직히 좋긴 좋다”며 웃었다. “일본에 올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고 했다. 가난과 싸웠던 어린 시절 얘기였다.

“3남2녀 중 막내인데, 우리 다섯 남매가 방 한 칸에서 잤을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부모님 방 하나, 자그마한 부엌 하나 더 있는 게 전부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5남매 먹여 살리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안 해 본 일이 없었으니까. 이젠 내가 돈도 벌었으니 부모님도 편하게 모시고 싶고, 우리 가족 모두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는 2008년 야쿠르트에 입단할 때만 해도 연봉 30만 달러에 불과했다. 당시와 현재의 환율이 다르지만 3억원 남짓한 금액.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연봉은 적었다. 그러나 이젠 팀내에서도 당당히 최고연봉 선수가 됐다. 야쿠르트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재정이 넉넉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액을 지불한 것은 그만큼 임창용이 반드시 필요한 전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야쿠르트 사장은 임창용과 계약이 끝난 뒤 에이전트 박유현 씨에게 “우리 팀 사정에 임창용에게 너무 많은 돈을 썼다. 내가 잘리면 당신이 책임져라”며 농담을 건넸을 정도다.


○세이브왕 선언 “말을 해야 현실이 되는 것 같다”

임창용은 “연봉을 많이 받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크다. 올해 정말 더 잘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저연봉 선수라면 부진해도 남들 눈에 띄지도 않지만, 고액연봉 선수는 부진하면 당장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최근 스프링캠프에서 일본 기자들에게 “세이브왕을 하고 싶다, 일본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도 깨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일본 언론도 대서특필했다. 한국 시절에도, 일본에 온 뒤에도 그는 좀처럼 시즌 전에 자신의 목표를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크나큰 변화다. 왜 그랬을까.

“그동안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해도 말할 수가 없었다. 특히 마무리투수의 세이브 숫자는 목표한 대로 이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젠 생각이 바뀌어다. 자꾸 말을 해야 현실이 되는 것 같더라. 이젠 말을 해 놓고 내가 쫓아가려고 한다. 우리 팀은 올해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고, 우승을 위해 나에게 거액을 안겼다. 그래서 나도 최고의 성적을 목표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역대 일본프로야구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은 46세이브다. 그것을 뛰어넘고 싶다는 임창용이다.


○올 시즌 대기록 줄줄이 눈앞에

그에게는 올시즌 여러 가지 기록들이 눈앞에 있다. 일본프로야구 3년간 96세이브를 기록한 그는 우선 3세이브를 더하면 역대 한국인 일본프로야구 최다 세이브 기록을 갈아 치운다.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주니치 시절 4년간(1996∼1999년) 기록한 98세이브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36세이브를 보태면 한일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 기록을 합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으로는 역대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고지다.

그는 “선동열 감독님 기록을 깨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웃은 뒤 “일단 일본 100세이브를 채우고, 한일통산 300세이브를 노리겠다. 그런 다음에는…. 은퇴할 때까지 400세이브까지는 가야하지 않겠나.”

줄을 서시오! ‘미스터 제로’는 여성팬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야쿠르트 임창용이 스프링캠프 휴식 시간을 틈타 몰려든 일본 여성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다.



○한국에 있었으면 지금쯤 은퇴했을지도

그는 일본프로야구에 도전한 것을 야구인생의 전환점으로 여기고 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찾았기 때문이다. 바로 야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막판에는 정말 죽겠더라. 팀에서 비중도 없고, 잘 던지는 것 같아도 타자들에게 맞아나가고…. 목표가 없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은퇴했을 것이다. 아니면 아마 삼성에서 트레이드돼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근근이 야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여기에 오고 나니 목표가 생겼다. 나 스스로에게 채찍질도 했다. 모두가 (일본에서) 안 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못하면 더 창피할 것 같았다. 더 집중하고, 더 노력했고, 그래서 더 야구가 즐거워졌다.”

한국프로야구 출신 선수들은 대부분 첫해 고전했다. 그러나 그는 첫해부터 성공가도를 달렸다. 2008년 개막전에서 마무리투수 이가라시 료타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전격적으로 소방수로 발탁돼 최고의 마무리솜씨로 일본열도를 정복했다.

“첫해에는 다들 고생한다고 하지 않나. 나도 첫해에는 1군에 살아남고, 인정받는 게 목표였다. 첫해부터 그렇게 잘 할 줄은 나도 몰랐다. 이젠 나이도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게임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준비를 하면 80∼90% 등판상황이 온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일본은 마무리투수에게 1이닝만 던지게 한다. 그러니 부담 없이 던질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이닝만 집중하면 된다. 일본에 와서 정말 대우를 받고, 이렇게도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구나 느낀다.”


○결혼? 야구가 재미있어서 은퇴 뒤로

그는 과거 이혼의 상처가 있다. 홀로 타국에서 외롭게 생활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을까. 그는 이 질문에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결혼은 은퇴 후에 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야구가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란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은퇴 이전에라도 결혼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야구만 생각하고 싶다. 난 야쿠르트 팀에 빚을 졌다. 누구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 나를 받아준 팀이고, 기회를 준 팀이고, 나에게 거액을 안긴 고마운 팀이다. 그걸 좋은 성적으로 갚아야 한다. 지금은 야구만 생각하고 싶다. 야구만 하는 것도 너무 즐겁다.”

우라소에 시민구장의 잔디밭에 앉아 인터뷰하는 동안 팬들은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처음엔 팬들이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하기야 그땐 내가 누군지 알았겠나. 갈수록 사인요청이 많아지고 있다. 내 비중이 커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임창용은 실력과 몸값뿐만 아니라 인기까지 치솟고 있다.우라소에(일본 오키나와현)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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