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3D 분석] ‘히어로’ 윤희상을 키운건 7할이 이만수였다

입력 2011-10-15 0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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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준PO에서 윤희상이라는 보물을 발견했다. 7년이라는 무명세월, 툭 하면 ‘그만두고 싶다’고 되뇌며 살기 바빴지만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날개를 달았다.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 윤희상을 키운 사람들

이감독 1·2군 오가는 과정서 발견한 보물


SK 사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때는 수석을 하다 2군감독 가고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고. 이만수 감독대행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보면 당시 2군에 안 갔더라면 윤희상, 박희수 등을 알아볼 수 있었겠나?”

불펜 박희수의 투심패스트볼, 선발 윤희상의 포크볼은 준플레이오프(준PO) SK마운드의 히트상품이었다. 둘 덕분에 SK는 4차전에서 준PO를 끝냈고, 무리 없이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 임할 수 있게 됐다.윤희상의 압권은 4차전의 6.2이닝 무실점 투구였다.

입단 7년 만에 찾아온 첫 번째 큰 기회를 윤희상은 낭떠러지에서 나뭇가지 붙잡듯 잡았다. 윤희상의 오늘을 있게 만든 은인들의 증언을 다각도에서 청취했다.


7년만에 “야구가 하고 싶다” 진실된 고백

허정욱 스카우트

2003년 내가 스카우트 되고나서 처음 뽑은 선수가 희상이였다. 당시 2차 1순위가 윤희상, 2순위가 정우람이었다. 190cm가 넘는데 구속은 145km가 나왔다. 큰데도 민첩성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성격이 한번 잘 던지다가도 꾸준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렇게 7년이 흘렀는데 올 봄에 “야구가 하고 싶다”고 하더라. 2군 경기를 가면 묵묵히 던지고 있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김상진 투수코치

(윤희상이 멘토로 꼽는다) 하드웨어는 좋다. 그러나 자기 공에 대한 믿음이 약했다. 그 나이에는 맞더라도 힘으로 붙어야 되는데 자꾸 경기운용부터 생각하려 들었다.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리고 해보고 나서 결과가 나빠도 남는 게 있다고 했다.

실패가 아니라 실수라고 했다. 도망가지 않고 부딪히는 절박함으로 준PO를 던져서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흙 속의 진주’ 윤희상(왼쪽 끝)을 발견한 이가 2군 감독이었던 SK 이만수 감독대행(가운데)이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이만수 감독대행

2군 감독을 하면서 희상이의 투구능력을 봤다. 그런데 능력치가 3이라면 1에서 만족해 버렸다. 그때마다 재능과 잠재력을 일깨웠는데 준PO 4차전 통해 ‘이제 되는구나’라고 느꼈길 바란다.

포수 정상호

직구와 포크볼이 좋다. 삼진 잡을 수 있는 구위를 갖고 있다. 너무 완벽하게 던지려는 경향이 있어서 수비를 믿으라고 얘기해준다. 큰 경기여도 떨지 않는다.

포크볼은 롯데 조정훈의 것보다 각은 작은데 스피드가 있고, 키가 커 포인트가 좋다. 직구가 빨라서 더 위력이 있다.

윤희상

어렸을 때는 못 던질 때 좋은 말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익 때 사회생활 해보고 사회인야구, 리틀야구 선수를 가르치면서 나같은 선수를 만나서 가르치는 심정을 이해했다.

동기인 정우람, 임훈이 야구해서 명성을 얻는 걸 보고서 올해부터 마음을 달리 먹자고 했다. 봄 전지훈련부터 야구를 제대로 하고 싶어졌다. 예전이었다면 2군에 계속 있었으면 툭하면 ‘때려 치워야지’ 했는데 2군에서도 열심히 하니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더라. 1구 1구 정말 열심히 던지는 우람이 보고 많이 배운다.

문학|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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