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SK 성준 투수코치 “타자 진 빼는 만만디피칭이 내 필살기였죠”

입력 2012-01-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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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구구속이 시속 130km대 중반에 불과했지만, 빼어난 완급조절로 타자들을 요리했던 직구구속이 시속 130km대 중반에 불과했지만, 빼어난 완급조절로 타자들을 요리했던 SK 성준(가운데) 코치. 그는 긴 인터벌 때문에 ‘만만디’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지만, 역대 좌완통산승수에서 2위(97승)에 오를 만큼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전지훈련 중인 성 코치가 김원형(왼쪽), 조웅천 코치와 함께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제공 | SK 와이번스

빨라야 130km대…어깨 다친후 구속이 뚝
긴 인터벌과 치밀한 분석은 벼랑 끝 생존술
폭염속 경기 늘어지자 주자 홈 돌진 소동도
“3승 남기고 멈춘 100승 꿈, 지도자로 풀것


‘타자가 알고도 못 친다’는 빠른 공이야 말로, 모든 투수들의 로망이다. 파이어볼러에 대한 투수들의 열망, 체격 조건과 야구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시속 140km대의 직구도 강속구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빠른 공의 홍수는 “스피드건에 찍히는 숫자가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야구격언을 더 분명히 확인시키고 있다. 150km를 던지는데도 1군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못한 투수들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130km대 직구로 10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도 존재한다. 이렇게 ‘느림’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투수들의 원조 격은 바로 SK 성준(50) 1군 투수코치다. ‘만만디’로 불린 그는 ‘타격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워렌 스판의 명언을 자신의 공속에 녹인 투수였다.

○고교야구스타, 프로를 꿈꾸다

성준 코치는 경북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1년, 소속 팀을 전국대회 4관왕으로 이끌며 주목을 받았다. 선린상고의 황금기를 이끌던 고교야구 스타 박노준과 김건우 등이 그의 동기다. 이후 한양대에 진학한 성 코치는 1982년 막을 올린 프로야구를 보며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다. “잠실구장이 개장한 다음에는, 한양대 캠퍼스 언덕에서도 잠실의 조명이 보였어요. 야간 훈련을 마치고 돌아갈 때 그 불빛을 보며 ‘나도 저 무대에 서겠다’고 다짐하곤 했지요. 특히 삼성 경기는 꼭 지켜봤습니다. 김일융 선배가 던지는 모습은 ‘한 마리의 고고한 학’과 같아서, 나도 저렇게 던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직구·슬라이더가 주무기였던 15승 루키

1986년 꿈에 그리던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달성한 삼성은 당시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고 있었다. 투수진만 하더라도 김시진, 김일융, 양일환, 황규봉 등이 버티고 있었다. 신인 성준이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아 보였지만, 결국 그는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데뷔시즌 성적은 29경기 15승5패2세이브 방어율 2.36. 당시 성준 코치와 배터리를 이뤘던 SK 이만수 감독은 이렇게 회상했다. “성 코치의 공이 처음부터 느렸던 것은 아니에요. 신인시절에는 140km 이상의 직구를 던졌어요. 당시로서는 빠른 공이었지요. 볼끝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직구 뿐 아니라 슬라이더도 수준급이었어요.”


○학구파 투수, 만만디로 재탄생

하지만 어깨부상이 성 코치의 인생을 뒤바꿔놓았다. “구속이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저도 살 길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누구나 생존을 위해서 진화하는 법이잖아요. 그 답은 찾으면 반드시 나온다는 것이 제 인생의 교훈이지요.” 상대를 치밀하게 연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시는 전력분석이 지금처럼 세밀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타자들의 장단점은 자기 스스로 파악해야 했다. 성 코치는 경기를 마치면 바로 숙소에 들어가 A3 용지를 폈다. ‘A라는 타자는 오늘 몸쪽 공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B라는 타자는 원래 초구를 잘 안치는 스타일인데, 오늘은 초구에 달려들었다.’ 이런 식의 메모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이만수 감독은 “성 코치는 예전에 태어났다면 아마 선비를 했을 정도로 대단한 학구파였다”고 회상했다. 인터벌을 길게 해서 상대의 진을 빼는 투구 스타일도 결국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만만디의 노하우와 체인지업의 장착

‘만만디’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였다. 성 코치는 “내가 단순히 인터벌을 길게 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차피 타이밍을 뺏기 위한 전략이니까, 단순히 느리게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초구는 타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빨리 던져요. 그럼 2구부터 타자는 ‘서둘러서 준비를 해야겠구나’ 싶어서 긴장을 하게 되지요. 이 때부터는 또 천천히 가는 거예요. ‘퀵, 슬로우, 슬로우’ 또는 ‘슬로우, 슬로우, 퀵’ 뭐 이런 식이지요.” 1986년 15승, 1988년 11승 이후 잠시 주춤하던 그는 1991년과 1992년 각각 8승을 거두며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결국 1993년(12승)과 1994년(14승)에는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당시 삼성 권영호 투수코치로부터 체인지업을 전수받으면서, 타자를 농락하는데 더 가속이 붙은 덕분이었다. “제가 체인지업을 배울 때 이미 서른이 넘었어요. 그 때만 해도 서른이면 운동선수로서 환갑이었거든요. 그래도 조금씩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래서 2∼3년 뒤에 또 커브를 장착했지요. 덕분에 직구구속이라고 해봐야 최고가 135km 정도였는데도 잘 버틴 것 같습니다.”


○지연작전에 말려 제 풀에 쓰러지는 상대도

주말이면 낮경기를 하던 시절, 인조잔디의 열기 때문에 대구구장의 체감온도는 40도 가까운 날도 있었다. 성 코치가 마운드에 서는 날이면, 적군도 아군도 지치기 일쑤. 경기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TV중계도 “정규 방송 관계로…”라는 말로 끝나는 경우가 잦았다. 성질이 급한 선수는 제 풀에 쓰러지기도 했다. “정말 무더운 날이었어요. OB와의 경기였는데 3루주자가 정수근이었지요. 수비 시간이 너무 길어졌어요. 한 30분 쯤 흘렀나? 주자도 야수도 지칠 대로 지쳤지요. 그 때 너무 더웠는지 정수근이 홈스틸을 하는 거예요. 결국 아웃이 됐는데…. 나중에 당시 OB사령탑이셨던 김인식 감독님께 여쭤보니 사인낸 것은 아니라고 하시던데…. 상대팀에게는 그렇다고 쳐도 우리 팀 동료들에게도 미안하죠.”

만만디의 지연 전략에도 위기가 있었다. 1997년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투수가 공을 15초 이내에 던지도록 규칙을 변경했다. 그 전까지는 20초 이내였다. 하지만 그 해에도 35세의 노장 성준은 7승7패 방어율 3.31로 선전했다. “규칙이 저 때문에 바뀌었다는 말도 있었어요. 하지만 15초도 결국 제가 포수로부터 공을 받은 시점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볼을 늦게 받으면 되는 것이지요. 만약 지금처럼 12초 이내라고 해도 제 나름의 방법으로 적응해 갔을 것입니다.”


○등번호처럼 현역 14년, 하지만 못 이룬 100승의 꿈


성 코치는 신인시절 14번을 달았다. “입단할 때부터 다짐했어요. 프로에서 14년을 뛰어보자. 결국 등 번호처럼 됐네요.” 데뷔이후 1998년까지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그는 1999년 선수생활의 마지막 해를 롯데에서 보냈다. 통산 100승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1998년까지 통산 96승을 기록한 그는 100승에 단 4승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1999년 단 1승을 추가하는데 그친 뒤, 통산 97승의 성적으로 14년간의 프로생활을 마감했다. “한창 때는 3승이 아무 것도 아닌데, 나이 들어서는 역시 힘들더라고요.” 프로야구 30년 역사에서 통산 10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22명. 이 가운데 좌완투수는 통산승수 1위 송진우(210승·한화코치) 뿐이다. 성 코치는 현재 통산승수에서 100승 투수 다음인 23위, 좌완통산승수에서는 송진우에 이어 당당히 2위에 올라있다. “현역 시절 한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했어요. 지도자로서도 1군에 있는 동안에는 우승을 맛보지 못했지요. 100승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우승반지로 달래보고 싶습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성준 코치?
▲생년월일=1962년9월25일 ▲출신교=계성초∼대구중∼경북고∼한양대 ▲키·몸무게=180cm·72kg(좌투좌타) ▲프로경력=1986∼1998년 삼성, 1999년 롯데, 2001년 SK코치, 2007년 롯데코치, 2010년 한화코치, 2011년 삼성코치, 2012년 SK코치 ▲프로 통산 성적=301경기 97승(10완봉)66패8세이브, 방어율 3.32 ▲통산승수 23위, 좌완통산승수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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