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풍당당 배 형사도 최 하사도 “야구없인 못살아”

입력 2012-09-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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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의 벽이 가장 견고한 종목 중 하나인 야구에서도 서서히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현직 형사인 배새롬씨(왼쪽 사진)와 특전사 부사관 출신인 최주리 씨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선수들이 여자야구를 주도하고 있다. 익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

性벽 넘어 홈런…그녀들의 특별한 도전

야구는 금녀의 벽이 가장 견고한 종목으로 꼽힌다. 올림픽만 보더라도 그렇다. 유도는 1992년, 역도는 2000년, 레슬링은 2004년 올림픽부터 여성의 참여가 허용됐고, 2012런던올림픽에선 여자복싱도 정식종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야구만큼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남자경기만 열렸다. 그 대신 소프트볼이 여성들의 올림픽 정식종목이었다. 9월 8∼9일 전북 익산 국가대표 야구전용훈련장에서 열린 2012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모두는 이런 금녀의 벽을 깨고 있다. 때로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그녀들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현직 형사 선수도, 특전사 부사관 출신 선수도 눈에 띈다. 배새롬(34·서울 떳다볼) 씨와 최주리(25·경기 안양 산타즈)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라운드 ‘매의 눈’ 현직 형사 배새롬 씨
사회인야구팀 남자들과 호흡 맞추기도
“법률보다 야구규칙 익히기 더 어려워요”

군인정신 똘똘…특전사 출신 최주리 씨
3개월전 남자친구따라…야구매력 흠뻑
“단결은 필수…꼭 한번 홈런 치고 싶어요”



○형사 선수 배새롬 씨

배새롬 씨는 현재 서울중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대 경사로 근무 중이다. 야구장 밖에선 공무원범죄, 지적재산권, 불법오락실, 사금융, 보이스피싱, 선거사범 등과 관련된 업무를 맡는다. 그라운드 안에서도 ‘매의 눈’을 켜야 한다. 그녀는 팀의 감독임과 동시에 투수와 유격수 등 주요 포지션을 맡고 있다. 1990년대 후반 PC통신 열풍의 시절, 소프트볼 동호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 야구와의 인연의 시작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여자이다 보니까, 주변에 저 같은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대학교도 운동을 병행할 수 있겠다 싶어서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할 정도였어요. 대학 때 배운 유도도 공인3단입니다.”

소프트볼로 기본기를 익히고, 2006년부터 야구에 뛰어들었다. 중부경찰서 사회인야구팀에서 남성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리틀야구장에선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됐다. “야구는 룰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혀야 한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경찰도 법을 잘 알아야 하거든요. 제 업무만 보더라도 공직선거법, 집시법, 풍속영업관련법률 등등…. 그런데 그것보다 야구규칙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야구는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요.” 팀 내야의 핵심인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 다이빙캐치를 해서 더블플레이로 연결시키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며 웃었다.


○특전사 출신 선수 최주리 씨

최주리 씨는 2008년 7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특전사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주요 임무는 “공개하기가 어렵다”고 할 정도로 특수한 것이었다. 그녀는 한겨울 강원도의 오지에서 진행된 설한지(雪寒地) 생존훈련은 물론 스키훈련까지도 모두 이수했다. 곡괭이로 동토를 깨고 숙영지를 만들던 장면까지 곧잘 설명해냈다. 국군의 날에는 격파시범을 한 적도 있다. “군인은 사명감과 자부심 등 남다른 직업정신이 있잖아요. 군인이 꿈이었기 때문에 기왕 하는 것,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특전사에 자원했습니다.”

전역한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아서인지 소위 “다나까” 말투가 튀어나왔다. 야구와 인연을 맺은지는 3개월이 흘렀다. 남자친구와 캐치볼을 하다가 야구의 매력에 빠져 안양에 있는 야구팀에 찾아갔다. 이후 특전사에서 단련된 운동신경 덕분인지, 짧은 시간 만에 좌익수 자리를 꿰찼다. “군대에서도 단결의 정신이 중요하듯이, 야구도 한 명만 잘해선 이길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이 야구와 군대의 공통점입니다. 사격 때처럼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집중해야 한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야구선수로선 아직 새내기인지라 그녀의 포부는 원대하다. 최 씨는 “물론 어렵겠지만, 꼭 한번 홈런을 치고 싶다”며 배트를 휘둘렀다.



익산|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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