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상 “촬영내내 알몸 고문…가슴이 먹먹했어요”

입력 2012-11-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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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에 이어 신작 ‘남영동 1985’에서 실존인물을 연기한 박원상.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 ‘남영동 1985’서 故김근태 역 열연한 박원상

발가벗겨진 채 온갖 치욕과 수모
수기 바탕 현실은 더 잔혹했겠죠

시위대 서본적도 없는데…한때 주저
이경영 선배의 다독임에 용기냈죠

촬영할수록 죄의식에 괴로웠지만
힘든 기억 세상에 알려 뿌듯합니다

한 편의 영화는 다채로운 의미를 지닌다. 보는 동안 짜릿한 스릴을 주는 영화도 있지만 촬영하는 배우부터 관객까지 마음을 졸이며 이야기의 깊이를 들여다봐야만 하는 작품도 있다. 22일 개봉하는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와 주연 박원상(42)은 후자에 속한다.

“힘들었다. 힘들 수밖에 없을 거라 믿었다. 관객이 그 힘든 의미를 함께 견뎌준다면. 과거의 일을 다시 기억해 지금을 돌아볼 수 있기를. 그게 어른의 책임이기도 하고.”

박원상은 저음의 목소리로 영화가 불러온 만감을 차분하게 설명해나갔다. 현실은 영화보다 잔혹하지만 그 현실을 고스란히 영화로 담아내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박원상은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을 하던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실제로 당한 고문의 과정을 연기했다. 영화는 김 고문의 수기를 바탕으로 했다. 잔인할 정도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영화에서 박원상은 발가벗겨 내던져진 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온갖 치욕을 겪었다.

‘남영동 1985’는 올해 초 부정한 사법권력을 고발해 흥행에 성공한 ‘부러진 화살’에 이어 정지영 감독과 박원상이 다시 손잡은 작품. 박원상은 “한 편 더 하자”는 정 감독의 제안에 주저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연극하면서 과연 정지영 감독님과 영화 찍을 기회가 있을까 막연히 동경했던” 박원상이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받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과연 내가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과연? 강한 신념을 갖고 인생을 올곧게 살아온 분의 삶을 연기할 자격이 있을까. 대학 때도 친구들은 세상에 나가 바리게이트를 칠 동안 나는 연극을 핑계로 극장에만 있었는데. 누군가 ‘네가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있을까.”

고문기술자 역을 맡은 이경영은 그런 박원상을 다독였다. “네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고도 했다. 어렵게 나선 첫 촬영은 손발이 묶인 채 물고문을 당하는 장면. 유년 시절 생긴 물 공포증 탓에 30년 가까이 물 속에 들어가 본 적 없는 박원상의 몸이 물에 잠겼다.

“영화에선 연기할수록 고문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김근태 상임고문의 수기에는 실제 고문은 당해도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써 있다. 고문 피해자들의 마음이 내게 들어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죄의식? 부채의식? 막막했다.”

박원상이 고문당하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사진제공|아우라픽쳐스


영화는 실제 벌어진 일을 빠짐없이 묘사하며 실존 인물들의 이름만 바꿨다. 믿기 어렵지만 우리가 겪은 실화. 이는 ‘남영동 1985’가 개봉 후 관객에게 강렬한 충격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원상은 “고문에 관한 영화이자 용서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어쩌면 “기억에 대한 영화일 수 있다”고도 덧붙인 그는 “지금은 1985년의 공포로부터 멀리 와 있지만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린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게 어른들의 몫 아니겠느냐”고 했다.

굵직한 영화 두 편을 끝낸 올해는 박원상에게 남다른 시간. 그런데도 그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작품을 만났다는 사실 말고 달라질 건 없다. 연기하는 남은 시간도 재미있기를 바랄 뿐이지. 내 꿈? 배우 일이 질리지 않기를. 어느 날 촬영장에 나가면서 ‘재미없다’고 느낀다면 그때가 연기를 관둘 순간이다.”

박원상은 당분간 가족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10년 넘게 곁에 있어 준 아내와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2학년생인 두 아들에게 가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정신없이 보낸 1년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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