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 월드컵 에세이] 교민들, 1·2차전 보려면 3700km·60시간 버스투어

입력 2014-03-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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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월드컵은 거리와의 전쟁

서울∼부산 다섯번 가까이 왕복하는 셈
숙박 평소보다 5배…비행기는 언감생심
치안 불안정…현지 경찰 에스코트 계획
교민 5000여명 한국팀 전경기 단체응원


브라질은 땅덩어리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나라다. 이번 월드컵은 이동거리와의 싸움이자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기후와의 전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한국대표팀은 32개 출전국 중 이동거리가 비교적 짧은 편인데도 베이스캠프에서 3군데 경기장을 오가는데 5000km 가까이 왕복해야 한다.

그러나 대표팀 응원을 준비 중인 현지 교민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다. 한국 교민들은 대부분 상파울루의 봉헤찌로 또는 브라스 지역에 모여 산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남대문쯤 되는 곳이다. 한국인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국인 밀집도로 따지면 아마 전 세계 최고일 것이다.

작년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상파울루 교민 체육회 사람을 만났다. 한국 경기마다 약 5000장을 교민 몫으로 예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브라질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이 약 5만 명(외교통상부 홈페이지 기준)이고, 90% 이상 상파울루에 산다는 점을 감안하면 브라질 전체 한국 교민의 10분의1이 대표팀 응원을 계획하는 셈이다.

대표팀은 대회 기간 내내 전세기를 타지만 교민들은 다르다. 비행기는 언감생심이다. 벌써부터 브라질 국내선 티켓을 예매하려면 평소 가격에 ‘0’을 하나 얹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10배가 올랐다는 뜻이다. 숙박은 5배가 뛰었다. 그나마 상파울루에서 출발하는 국내선 비행기도 하루에 몇 편 안 된다. 월드컵 기간 동안 증편할 거라고는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비행기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게 중론이다. 브라질은 기차도 없다. 마을과 마을을 운행하는 전차만 간간이 있다. 이유가 있다. 브라질은 운송노조의 힘이 막강하다. 이들의 주 생계수단이 버스와 트럭이다. 정부나 국회에서 ‘기차’의 ‘기’자만 꺼내도 운송노조가 난리가 난다. 상파울루과 리우데자네이루를 연결하는 기차만이라도 일단 건설하자는 주장이 얼마 전 나왔지만 운송노조의 반대로 역시 지지부진하다. 교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단 하나, 버스 밖에 없다. 교민들이 출발하게 될 상파울루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1차전이 벌어지는 쿠이아바까지 1000km가 넘는다. 버스로 쉼 없이 달려도 14시간이 걸린다. 브라질은 장거리 이동 버스가 많아 중간 중간 기사를 바꿔가며 운행을 계속한다. 중간에 밥도 먹고 쉬어가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20시간 가까이 된다. 왕복 2000km에 오가는 시간만 40시간이 넘는다. 상파울루와 한국과 알제리의 2차전이 열리는 포르투 알레그리는 850km 떨어져 있다. 버스로 10시간. 왕복 1700km에 20시간 이상 걸린다. 교민들은 1,2차전 두 경기를 보기 위해 3700km 넘게 이동해야 하고 버스 안에서 60시간을 보내야 한다. 서울에서 부산(편도 400km 기준)을 5번 가까이 왕복하는 셈이다. 브라질 고속도로는 한국처럼 잘 닦여져 있지도 않다. 상파울루만 벗어나도 강원도 가는 길처럼 가파르다. 자동차 전용도로도 아니다. 자전거, 오토바이는 흔하고 심지어 걷는 사람도 있다. 사고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한국처럼 때에 맞춰 중간 중간 주유소나 휴게소가 나타나지도 않는다. 브라질에 갔을 때 ‘조금 이따가 주유소 나오면 기름을 넣자’는 생각으로 고속도로에 올랐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몇 시간을 달려도 끝이 없는 사탕수수밭만 이어졌다. 결국 기름이 떨어져 중간에 차가 멈췄던 아찔한 기억이 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역시 치안이다. 브라질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버스를 한 대 통째로 막아버리고 위협하는 일도 다반하다. 교민들이 현지 경찰에 에스코트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사실 얼마나 보호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민들은 이런 고난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벌써부터 차근차근 응원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우리 대표팀 경기를 보기 위해 산 넘고 물을 건너는 것은 물론 과장을 조금 보태면 목숨까지 걸 각오다.

월드컵이 100일 남았다. 대표팀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 자꾸 들려와 걱정이다. 다친 선수들 본인이 누구보다 속상할 거고, 이를 지켜보는 홍명보 감독의 심정이 가장 답답할 것이다. 축구에서 부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몸과 몸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특성상 부상은 축구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이 이제는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100일의 하루하루가 다 월드컵 기간이라는 마음으로 좀 더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할 때다.

남은 기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최종엔트리에 드는 것, 주전경쟁에서 이겨 그라운드를 밟는 것 또 조별리그에서 좋은 성적으로 16강에 오르는 것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과 다부진 정신력으로 후회 없이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기고 지고는 그 다음 문제다. 이것이 목숨까지 걸고 대표팀을 응원하러 오는 교민들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싶다.

● 김학범 해설위원(전 성남일화 감독)은 브라질 축구 문화에 가장 박식한 축구인으로 꼽힌다. 김 위원은 1993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45일 동안 국제축구연맹(FIFA) 코치 스쿨에 참여하며 브라질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프로팀 코치, 감독 시절 외국인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브라질을 직접 찾았고, K리그 비 시즌 때도 매해 번갈아 유럽과 남미 프로리그를 관전하며 축구 공부를 했다. 지난해에도 3개월 정도 남미축구를 둘러봤다. 김 위원은 브라질에서 직접 보고 느낀 문화를 중심으로 월드컵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풀어낼 예정이다. 한국축구 최고의 전술가답게 월드컵 기간에는 날카로운 관전평도 전한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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